5060 여성복 브랜드 ‘손정완’ ‘미세즈’ 등은 1990년대 백화점 효자였다. 고급스러운 재질과 디자인으로 강남 여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이들과 같이 태어난 여성복 브랜드는 톰보이와 시스템, 타임 등이다. 이들 중 3~4개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체된 여성복 시장에 최근 변화가 일고 있다. ‘마뗑김(Martin Kim), 마르디 메크르디, 인스턴트 펑크 등 신진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가 약진하면서다. 인스타그램을 통한 셀럽 마케팅, 최신 패션 트렌드에 맞춘 스타일이 주목 받으면서 무신사와 대명화학 등 패션 ‘큰 손’들의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국민 티셔츠 등극"…뭉칫돈 몰리는 여성복 브랜드 [배정철의 패션톡]

2세대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 등장

22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온오프라인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 수는 6월 기준으로 7500여개로 집계됐다.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를 모아놓은 플랫폼 W컨셉에 입점한 브랜드 수를 기준으로 했다. 2019년 6000여개였던 여성복 브랜드는 작년 7000여개로 2년 만에 1000여개 증가한 뒤 계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W컨셉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이 끝난 작년 무렵부터 여성 브랜드가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의 성장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마뗑킴은 1년 새 매출이 40억원에서 200억원 규모로 커졌다. 올해 매출은 온오프라인을 합쳐 500억원을 목표로 할 정도다. 이들 브랜드는 큼지막한 로고와 독특하면서 트렌디한 디자인, 화려한 색감 등이 특징이다.

‘고투 워크(Go to work)’라는 최근 사회 분위기와 맞아들어가면서 관심이 폭발했다. 직장인들이 사무실에 다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격식을 갖추면서도 세련된 의상에 관심이 커진 때문이다. 이미 국내 길거리에서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마뗑킴과 마르디 등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호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국민티’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섬의 패션 브랜드 시스템과 타임 이후 이렇다 할 여성복 브랜드가 없는 시장에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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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브랜드의 아성 넘을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여성복 브랜드의 비결에는 인스타그램에 있다. 마뗑킴의 김다인, 마르디 메크르디 박화목 대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시작했다. 김다인 대표(사진)는 인스타그램에 매일 사진을 올려 소비자와 소통하는 자칭 ‘인스타 광’이다. 매일 수백통이 넘는 다이렉트메시지(DM)를 받고 답할 정도다.

10만명의 팔로어를 바탕으로 패션 사업을 시작한 김 대표는 “동대문 의류 사입(구매대행)을 시작으로 인기를 끌자 패션 브랜드를 론칭했다”고 말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김 대표는 “기성 여성복 브랜드는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트랜드를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내외 패션 트렌드를 바로 상품에 빈영하는 게 포인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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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금 몰리는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

국내 패션 M&A의 주류도 스트리트 브랜드에서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로 옮겨가고 있다. 2020년까지는 디스이스네버댓, 널디, OIOI(오아이오아이)와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작년부터는 마뗑킴과 같은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에 돈이 몰리고 있다.

패션업계 ‘큰손’들이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지난 7일 여성 브랜드 전용으로 15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향후 2년간 20여개 여성복 브랜드에 투자할 예정이다. 마뗑킴은 이미 하고엘엔에프로부터 투자받으면서 대명화학 패밀리에 합류했다. 인스턴트펑크는 광고회사 디렉터스컴퍼니로부터 인수됐다.

이들 패션 브랜드는 백화점 등 오프라인 시장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패션 플랫폼에 7500여개가 넘는 여성 브랜드가 난립한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성장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제품 생산에 막혀 100억원대 브랜드에서 성장이 멈추는 기업이 대다수”라며 “제품 생산과 재고 관리 등 투자금을 받아야 규모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