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제공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일 "(한국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창설멤버로서 협상 과정에서 주도적인 '룰 메이커(Rule Maker)'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중심의 반중(反中) 공급망 전선인 IPEF에 한국이 단순 참여를 넘어 논의를 주도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정부가 천명한 셈이다. 중국이 이미 한국의 IPEF 참여 결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전달한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통상외교 전략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추 부총리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29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IPEF 추진 동향 및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IPEF 논의 과정에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한 추 부총리는 "룰메이커 역할을 수행하여 (한국) 공급망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 기회를 보다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29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29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는 지난달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IPEF 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지난달 21일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양 정상은 디지털경제, 회복력 있는 공급망, 청정에너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촉진에 방점을 둔 여타 우선순위를 포함해 우선적 현안에 대한 경제적 관여를 심화시킬 IPEF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함께할 것에 동의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한국의 IPEF 가입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전달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부장은 지난달 16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첫 화상 통화에서 "디커플링과 망 단절의 부정적인 경향에 반대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IPEF 참여 필요성을 직접 언급한 직후 중국 정부가 한·중 공급망 약화를 이유로 한국의 IPEF 참여에 반대 의사를 표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중국의 반대에도 IPEF 참여를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 논의에서 배제되면 중국과의 관계를 아무리 잘 유지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국익에 손해가 된다는 판단에서다.

한 경제부처 관료는 "한국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빠르게 성장한 나라이기 때문에 개도국부터 선진국까지 참여국 스펙트럼이 넓은 IPEF에서 중재자로서 논의를 주도하며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IPEF 출범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한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손해가 막심하다"고 설명했다.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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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EF 참여국은 현재 총 14개국이다. 지난달 23일 한국,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 7개국(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도 등 13개국이 출범 멤버로 참여했고 27일엔 피지까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추 부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IPEF는 향후 참여국을 늘려가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적인 경제협력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라며 "정부는 탈세계화, 블록화 등 변화하는 대외경제 여건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IPEF 협상에 임하는 수석대표 부처는 외교부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로 결정됐다. 대외 장관급 협의는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고위급 협의는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이 맡아 총괄 대응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통상 기능 이전과 IPEF 협상 주도권을 두고 다퉈온 산업부와 외교부의 갈등이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