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오존층 파괴 주범’ 에어컨 냉매의 세대교체
삼성전자가 올해 출시하는 가정용 에어컨 무풍 시리즈 신제품 90%에 탄소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냉매(R32 냉매)를 적용한다. 이어 LG전자도 상업용 시스템 에어컨 ‘멀티브이 에스’ 신제품 일부에 같은 냉매를 사용한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친환경 냉매가 국내 에어컨의 표준이 될 전망이다. R32 냉매의 지구온난화지수(GWP)는 기존 에어컨에 주로 쓰는 R410 냉매(2088)와 비교해 30% 수준인 675다. 탄소배출량도 R410A 대비 25%라 친환경 냉매로 평가받는다. R410A보다 냉매량을 20% 이상 적게 넣어도 동일한 성능을 발휘해 냉각 용량도 높다.

가전업체들이 R32 냉매를 쓰게 된 건 지난해 8월 전기용품 안전기준이 개정되면서부터다. 약가연성 물질로 분류된 R32의 국내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유럽 등 30여 개국에서 이미 적용한 R32 냉매를 쓸 수 있게 된 것. 다만 안심하긴 이르다. R32도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완전하지 않은 냉매이기 때문이다.

‘오존층 파괴 주범’ 에어컨 냉매의 세대교체


3세대 냉매 HFC도 규제 시작돼

냉매는 냉동장치 등에서 주위 열을 흡수해 응축기에서 열을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에어컨이나 냉장고, 정수기 등 가전제품과 자동차, 공조기에 사용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는 냉동 및 냉방 시스템에 충전된 냉매가 생애주기를 거치면서 매년 일정량 배출되고 폐기될 때까지 초기 충전량의 평균 80%가 배출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듀폰에서 만든 ‘프레온’이 표준 냉매로 자리매김하면서 대세가 된 염화불화탄소(CFC) 계열 냉매는 오존층파괴물질(ODS)로 알려지면서 1987년 몬트리올의정서를 통해 최초로 규제가 시작됐다. 대안으로 만든 수소화염화불화탄소(HCFC) 계열 냉매도 오존층 파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해 1997년 교토의정서에 의해 규제되면서 최근에는 오존층 영향이 없는 3세대 수소불화탄소(HFC) 계열 냉매가 쓰이고 있다. 여기에 해당되는 냉매가 국내 기업이 기존에 써온 R23·R410A 냉매다.

그러나 3세대 냉매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벗어나진 못했다. 3세대 냉매 역시 지구온난화지수가 CO2 대비 1300~1만4000배에 달하는 온실가스로 밝혀져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2019년 발효된 키갈리개정서에서는 몬트리올의정서상 규제 물질에 수소불화탄소(HFC)를 추가로 포함하고, 단계적 감축 일정을 도입했다. 국제적으로 같은 HFC라도 지구온난화지수가 낮은 냉매를 사용하라는 규제도 나타났다. 유럽은 ‘F-가스 규제’를 내놓고 당장 2025년부터 지구온난화지수 750 이상의 냉매를 3kg 이상 사용하는 분리형 에어컨은 유럽 내에서 제조 및 판매하지 못하게 했다. 이미 유럽은 R32 냉매를 사용하는 에어컨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R32 냉매가 적용된 에어컨을 4~5년 전부터 유럽 시장에 내놓고 있다. 미국환경보호청(EPA)도 지난해 HFC의 생산 및 소비를 2036년까지 15년간 단계적으로 85%까지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국내도 국제적 냉매 규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몬트리올의정서와 키갈리개정서에 따르면 당시 개발도상국 지위에 속한 우리나라는 2040년까지 3세대 HFC 기준 수량의 50%, 2045년까지 기준 수량의 85%를 감축해야 한다. 2세대 냉매인 HCFC의 경우 2030년부터 사용이 금지된다. 세계 5위 냉동 공조 기기 생산국인 우리나라도 냉매 규제 대응이 발등의 불이다.

최근에는 4세대 냉매로 대체 냉매와 물이나 암모니아 등 자연 냉매가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 대체 냉매는 2017년부터 현대차·기아가 선제적으로 자동차 냉매로 쓰고 있는 R1234yf다. 국내에서는 아직 경제성 문제로 3세대 HFC 계열 냉매가 퇴출되지 않은 상태다. 냉매 세대교체의 가장 큰 문제는 가연성과 가격이다. 2세대 냉매 HCFC의 20kg당 가격이 약 6만원이라면, 4세대 냉매 중 하나인 HFO 1kg은 2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오존층보호법에 따라 오존층파괴물질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면서 2030년을 목표로 HCFC의 단계적 감축을 실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법안에는 HFC 규제가 빠져 있다. 산자부는 지난 2월 키갈리개정서를 반영한 법안이 의원 입법으로 발의됨에 따라 최근 법안 개정을 준비 중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2013년부터 HCFC는 연차별로 감축하고 있으며, HFC 같은 경우 법안 발의에 따라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라며 “대체 냉매의 경우 개발 수준을 봐서 감축 일정을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폐냉매 회수율 1%에도 못 미쳐

국내의 냉매 데이터 관리는 어떨까? 기본적으로 환경부 산하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의 관리 대상이 1일 냉동 능력 20RT 이상 고압 냉매 사용 시설로 한정돼 있다. 100만 기 이상으로 추정되는 냉매 가전 중 20RT 이상 사용 시설은 약 1만5000개로 전체의 약 2%에 해당한다. 이 시설에만 냉매 사용량과 구입량, 회수량 등에 대해 냉매기록부를 전산에 입력하고 제출하게 되어 있다. 가정에서 사용 중인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 소형 냉매 가전은 포함되지 않는다.

냉매 관리 대상 자체가 적은 만큼 폐냉매 회수율도 적다. 20RT 이상 시설에 폐기가 발생할 때만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냉매 회수 업자가 절차에 따라 회수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폐기 발생 자체가 적다. 이 때문에 국내 냉매 생산량은 2019년 기준 연간 3만5000톤에 달하지만 생산량 대비 회수율은 1%에도 못 미친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환경부와 산업통상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냉매 생산량 3만여 톤 대비 2017년 회수율은 0.37%(267톤), 2018년에는 0.68%(251톤), 2019년에는 0.84%(291톤)에 그쳤다.
‘오존층 파괴 주범’ 에어컨 냉매의 세대교체
[인터뷰]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김영훈 프로

“내년부터 폐냉매 재사용 나설 것”

- R32 냉매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냉매는 에어컨이나 냉장고 같은 제품에서 열을 운반하기 위한 매개체다. 할로겐화탄화수소(프레온) 계열 냉매는 지구온난화지수 외에 오존파괴지수(ODP)값이 높아 사용되지 않으며, 수소불화탄소 계열 냉매는 오존층의 영향은 없으나 냉매 종류에 따라 지구온난화지수가 다르다. 이번에 적용한 R32 냉매는 수소불화탄소 냉매 중 하나지만 기존 R410A 대비 지구온난화지수가 3분의 1 수준이고, 냉매 사용량도 적어 온난화에 대한 영향이 적다. 냉방 효율이 2~3% 정도 높아 기존 R410 냉매 대비 약 86% 수준 냉매량으로 동일한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

- 약가연성을 띠는데, 안전성은 어떠한가.

“친환경 냉매 중 성능, 효율 등을 고려해 가장 우선 보급되는 냉매가 R32다. 다만 약가연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규격에 대한 부분과 제조, 운반, 설치에서 사용에 이르기까지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설령 누설이 있더라도 안전한 수준의 냉매량 범위 이내에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에어컨 신제품에 탑재할 수 있었다. 국내외 안전기준에 맞춰 누설 시에도 위험이 없도록 냉매량을 줄여 개발한 만큼 가정에서도 안전하다.“

- 유럽은 이미 친환경 냉매를 사용하나.

“유럽은 2년 전부터 친환경 냉매를 적용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보다 지구온난화지수 규제가 심해 대부분 유럽 판매 제품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일본, 중국 업체도 R32 냉매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 30여 개국에서 R32 제품으로 판매 중이며, 2024~2025년에는 다른 냉매로 변환될 가능성이 있다.“

- 폐냉매 재사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에어컨뿐 아니라 다른 제품에도 친환경 냉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구온난화지수가 더욱 낮은 냉매 적용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진행할 것이다. 폐냉매 재사용은 내년부터 미국 일부 지역을 기점으로 향후 적용 지역을 더욱 넓혀나갈 것이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