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데이크 '피크'
누데이크 '피크'
우리는 눈으로 음식을 즐긴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기 전 우리의 뇌는 이미 ‘맛있다’ ‘맛없다’를 구분해낸다. 일본의 색채연구가 노무라 준이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오감 중 맛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시각이 87%로 가장 크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처럼 맛은 혀가 아니라 뇌가 판단한다.

먹고 싶은 색, 입맛 없애는 색 따로 있다

붉은색은 식욕을 돋우고 달콤함을 연상시키는 반면 푸른색은 음식에서 쓴맛을 느끼게 한다. 붉은색 육회와 푸른색 육회를 상상해보라. 찰스 스펜스 옥스퍼드대 심리학 교수의 실험에서 적나라한 반응이 나온다. 스펜스는 불 꺼진 방에서 피실험자들에게 푸른색 식용색소로 염색한 스테이크를 제공하고 반응을 살펴봤다.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던 피실험자들은 불을 켜는 순간 먹는 것을 멈췄고 일부는 구토를 했다고 한다. ‘초미각자(슈퍼테이스터)’가 아닌 이상 우리의 미각은 시각에 지배당한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동안 음식업계에서 차가운 계열의 색은 ‘절대 피해야 할 색’이었다. 사람들은 빨강과 주황, 노랑, 녹색 순으로 높은 식욕 반응을 보이다가 푸른색, 보라색으로 색이 차가워지는 순간 식욕 반응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푸른색이나 보라색은 경험적으로 독, 쓴맛, 덜 익은 과일, 푸른 곰팡이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색이 섞인 검은색은 죽음, 그리고 탄 맛을 연상시킨다. 정반대인 흰색은 식욕을 자극하는 색이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하얀 식탁보 위에 붉은 러너를 깔고 흰 식기를 사용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블랙푸드’의 재발견…식탁에 부는 검은 바람

새로운 경험과 특이한 것을 찾아다니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디저트 시장을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금기’가 깨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검은색 케이크를 먹기 위해 긴 줄을 서는가 하면 일본에서는 새까만 커피가 인기다. 미국에서는 이미 5년 전에 검은색 아이스크림이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칸토 '블랙에이드'
칸토 '블랙에이드'
SNS가 보편화하면서 먹음직스러운 음식보다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디저트에 소비자들이 반응하고 있다. 검은색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검은콩, 오징어 먹물 등에 항암 효과가 있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검은색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도 줄었다.

리틀데미지는 LA아이스크림의 유행을 선도한 업체다. 세계 요식업의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LA 다운타운에서 리틀데미지의 ‘숯 아이스크림’은 큰 인기를 끌었다. 콘의 색깔도, 아이스크림 색깔도 짙은 검은색이다. 흑백영화 속 아이스크림을 보는 듯하다며 입소문을 탔다. 일본에서도 한 차례 블랙 디저트 바람이 불었다. ‘인스타바에’에 딱 맞는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인스타바에란 ‘인스타그램’과 ‘하에루(빛나다)’를 합성한 신조어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정도로 잘 찍힌 사진을 뜻한다. 효고현 고베 모토마치에 자리한 ‘히토 스탠드’는 세계에서 가장 검은 커피를 판매하는 곳으로 화제를 모았다.

원형들 '고수케이크'
원형들 '고수케이크'
한국에서도 작년 2월 젠틀몬스터가 론칭한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대표 메뉴 ‘피크’는 초록색 말차 크림을 검은색 먹물 페이스트리로 감싼 케이크다. 빵이 타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담백하고 바삭한 식감을 갖고 있다. 성수동의 ‘칸토’는 아예 블랙에이드, 블랙파운드 등 검은색을 주 색상으로 사용한다. 충무로의 ‘원형들’에서는 고수 케이크, 감태 퀸아망 등 기존에 사용되지 않았던 재료를 활용한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다. 식욕을 떨어뜨린다는 초록색이 이 매장의 대표 색깔이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