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퍼·레이 '심장' 만드는 삼기, 배터리부품 수출도 '불티'
㈜삼기는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폭스바겐 아우디 등에 들어가는 엔진·변속기·전기차 부품을 만드는 알루미늄 다이캐스팅(정밀 금속 주조) 전문업체다. 자동차의 심장격인 엔진 속 ‘실린더 블록’을 비롯해 변속기의 핵심 부품인 ‘밸브바디’,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외장부품인 ‘엔드플레이트’ 등 만들기 까다로운 고난이도 기술의 부품만 생산하기로 유명하다.

현대자동차의 캐스퍼 모닝 레이 등 경차모델의 80%엔 삼기의 엔진 실린더 블록이 들어간다. 폭스바겐의 경우 주력 전기차모델(ID3,ID4,ID5) 10대 중 3대엔 이 회사의 엔드플레이트가 탑재됐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50~60% 증가한 5700억~58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자동차 뿐만 아니라 전기차·배터리업계에서도 남다른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자동차'심장', 변속기의 '뇌' 등 까다로운 부품만 만든다

삼기는 1978년 자전거부품 제조회사로 출발했다. 창업주인 고(故) 김상현 회장은 당시 주 고객사인 ‘삼천리자전거’와 ‘기아’에 대한 애정을 담아 이들의 앞글자를 따 ‘삼기’라고 사명을 지었다. 1983년 자동차부품사로 변신해 기아의 프라이드, 봉고, 라이노 등에 부품을 공급했다. 1997년엔 기아차 부도사태로 자금난에 처해 회사가 문을 닫을 뻔 한 적도 있었다. 당시 김 회장은 사재를 털어놨고 직원들도 십시일반 월급·상여금 반납에 나서면서 기사회생했다. 김 회장은 “회사의 주인은 직원이다”, “성장하지 않는 회사는 죽은 회사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등 3가지 사훈을 강조하며 위기를 돌파했다.

이러한 경영철학은 남다른 기술력으로 열매를 맺었다. 엔진 실린더 블록은 2만여개 자동차부품 가운데 가장 고가이면서 만들기 어려운 부품이다. 현대차는 그동안 기술유출과 품질관리 우려로 이를 자체 생산하다 근래 들어 일부 외주로 돌리기 시작했는데, 삼기는 이 부품을 공급하는 주요 기업이다.

이 회사는 밸브바디 역시 2014년 아시아 최초로 폭스바겐에 직접 공급해 명성을 날렸다. 밸브바디는 미로처럼 복잡하게 설계된 밸브 안에 오일로 압력을 가해 기어를 바꾸는 기능을 한다. ‘자동변속기의 머리’로도 불린다. 김치환 삼기 대표는 “밸브바디를 자체 생산하던 폭스바겐이 처음으로 우리 부품을 장착키로 한 것은 폭스바겐 자체 제조능력보다 더 경쟁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캐스퍼
현대차 캐스퍼

LG엔솔, LG마그나 최대 공급기업...전기차와 차량경량화로 승부수

김 회장의 장남인 김 대표는 2014년 경영권을 승계해 전기차 위주로 사업을 재편했다. 기술 혁신 성과를 인정받아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와 중견기업연합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중견기업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0년엔 아예 당시 사명 ‘삼기오토모티브’에서 ‘오토모티브’를 뺐다. 내연기관을 상징한다는 이유에서다.

엔드플레이트는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전기차 배터리의 외부를 감싼 핵심부품이다. 국내 최대 배터리 제조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에 납품되는 엔드플레이트의 절반 이상이 이 회사 제품이다. 이 배터리는 최종적으로 폭스바겐 포드 포르쉐 등에 공급된다. 전기차 수요 폭발로 지난해 삼기의 엔드플레이트 매출은 전년대비 6배이상 증가했다.

삼기는 전기차 모터를 감싸는 외장부품인 모터하우징도 만들어 LG마그나에 공급하는 국내 최대 공급업체다. 스텔란티스와 포드에 최종 공급된다. 올 하반기엔 현대차그룹이 신규 양산하게 될 아이오닉6 니로EV 등 전기차에 감속기 케이스도 공급할 예정이다.
김치환 삼기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공장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삼기 제공
김치환 삼기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공장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삼기 제공
현재 삼기 매출 비중은 엔진 부품이 28%, 변속기 부품은 38%, 전기차 부품은 25%다. 김 대표는 “전기차 부품 매출 비중을 연내 33%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알루미늄 차체 부품사업도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자체 용광로로 알루미늄 합금 일관 생산체제(주조 가공 조립 등)를 갖춘 세계 몇 안되는 자동차 부품업체다. 전기차로 전환될수록 가벼운 차체 소재인 알루미늄 수요가 높아져 관련 매출도 급증할 전망이다. 차량경량화와 관련해선 현재 유럽 최고 공과대학인 독일 아헨공대와 공동 연구·개발(R&D)도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삼기는 전기차의 안전과 경량화 모두를 책임지는 글로벌 알루미늄 선도업체로, 삼기EV는 배터리 부품 전문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