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중 절반가량은 이공대 출신이다. 첨단 기술과 시장 트렌드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잡고 기업의 미래전략을 짜기 위한 ‘테크노 CEO’들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18일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1000대 CEO 가운데 이공계 출신 비율은 지난해 46.5%에 달했다. 2019년(51.6%)에 비해선 소폭 줄었지만, 상경계열(29.7%)보다 훨씬 높다. 경영전문가들은 “기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더한 경영자가 각광 받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는 채용시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달부터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SK하이닉스의 경우 총 29개 채용 분야 중 전공에 관계없이 지원이 가능한 분야는 경영분석 한 개뿐이다. 나머지는 사실상 이공계 전공자만 지원할 수 있다. 재무·구매 분야도 사실상 경영·경제 관련 전공자만 지원서를 낼 수 있다.

현대제철은 이달 초 경영지원·재경 분야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내면서 ‘전공 제한은 없지만 상경·법학 전공자 및 중국어·일본어 등 어학능력 우수자를 우대한다’고 명시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관련 분야의 직무적합성이 없는 지원자를 뽑으면 처음부터 교육하는 데 긴 시간과 큰 비용이 들어간다”며 “직무적합성을 판단하려면 대학 전공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학 취업팀 관계자들은 ‘문사철’(문학·사학·철학) 전공자가 입사하려면 상경 및 어학 등 다른 분야의 복수전공을 필수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코퍼레이션(옛 현대종합상사)은 이달 초 대졸 신입 채용 공고를 내면서 해외영업 파트의 경우 상경계열과 이공계 전공자를 우대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 정보기술(IT)·디지털 등 이공계 전공자 채용을 확대하는 추세다. 모집 인원이 많은 IT·제조업 기업 채용 시 이공대생과 비교해 인문계 전공자는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좁은 문을 뚫고 입사한 인문계 전공 지원자에 대한 기업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한 대기업 기획 담당 임원은 “인문학적 소양을 토대로 직무적합성까지 갖춘다면 기업들이 원하는 최고의 인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