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용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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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그룹은 최근 익명의 제보를 받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고릴라 캐릭터인 신세계푸드의 ‘제이릴라’가 글로벌 대체불가능토큰(NFT) 거래 사이트인 오픈시(Opensea)에 판매 상품으로 올라와 있다는 제보였다. NFT 형태의 디지털 상품으로 변신한 제이릴라의 가격은 0.1이더리움으로, 현금으로 환산하면 266.81달러(약 32만원) 수준이다. 아직 판매되지 않았지만 신세계그룹은 “익명의 이용자가 무단으로 만들어 올린 것으로 파악하고 오픈시에 삭제를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NFT 거래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돈이 된다면 뭐든 디지털 상품으로 만들려는 ‘NFT 사냥꾼’들 때문이다. 나이키, 에르메스 등 글로벌 기업이 자사 간판 상품을 도용한 이들과 소송전을 벌일 정도다.
정용진도 모르게…NFT 거래 사이트에 등장한 '제이릴라'

기업 콘텐츠 노리는 NFT 사냥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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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NFT 거래액은 해를 거듭할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세계 NFT 판매액은 2020년 9490만달러(약 1139억원)에서 지난해 249억달러(약 29조8750억원)로 폭증했다. 유일무이한 디지털 자산이란 희소성이 낳은 결과다. 해외에선 오픈시를 비롯해 레어러블(Rarible), 크립토펑크스(Cryptopunks), 슈퍼레어(SuperRare) 등의 글로벌 플랫폼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효성그룹이 메타갤럭시아를, 카카오는 클립드롭스라는 NFT거래소를 최근 선보였다.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NFT 헌터’들은 돈이 될 만한 상품을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지난해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등 한국 근대화 거장들의 작품을 NFT로 경매하려던 시도가 대표적이다. 당시 마케팅대행사 워너비인터내셔널은 이를 디지털아트 통합 플랫폼인 ‘비트코인NFT(BTC-NFT)’를 통해 NFT 예술품으로 처음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저작권자의 반발에 위작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경매 예고 이틀 만에 무산되기는 했지만, 미술계에선 NFT 시장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목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제이릴라 도용은 NFT 헌터들이 기업이 보유한 각종 콘텐츠로 영역을 확장한 사례에 해당한다. 캐릭터를 보유한 신세계푸드가 “제이릴라의 지식재산권(IP)을 임의로 만들어 올린 만큼 삭제를 요청하겠다”고 밝혔지만 의도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한상훈 피디앤로 대표변호사는 “저작권법상 저작권자에게는 공중송신권(제18조)이 있어서 디지털음원, 이미지 등 인터넷에 올라가는 저작재산권은 보호받는다”며 “다만 NFT로 변형된 저작물은 원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무단 NFT 생성자가 글로벌 온라인 거래소에 전송하는 경우가 많아 관련 분쟁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디지털 상품 확산

글로벌 대기업이 소송전을 불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나이키는 리셀(중고거래) 플랫폼인 스톡엑스가 무단으로 나이키 NFT를 판매했다고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스톡엑스가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를 NFT로 판매해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인 에르메스도 NFT 버킨백을 만들어 판 예술가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작가 메이슨 로스차일드는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버킨백을 패러디한 제품을 ‘메타버킨스(MetaBirkins)’라는 이름을 붙인 뒤 오픈시에 올려 4만2000달러(약 5037만원)에 판매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위·도용으로 인한 저작권 분쟁을 사전 차단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인터넷 2.0’으로 불리는 메타버스에서 소비자들에게 먹힐 다양한 디지털 자산을 미리 확보하는 게 필수라는 지적이다. 아디다스가 지난해 11월 이더리움 기반의 메타버스 플랫폼인 더샌드박스와 협업해 ‘인디고 허츠(Indigo Herz)’란 이름의 메타버스 캐릭터를 만들고, 이를 NFT로 상품화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에서도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레깅스업체 젝시믹스를 운영하는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은 갤럭시아머니트리와 손잡고 NFT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바타용 레깅스를 NFT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6일 ‘현대백화점 META HYUNDAI’ 등 3개의 NFT용 상표권을 출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