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집값 폭등으로 지갑 두께가 얇아지자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빈번해지고 있다. 기업들이 중장기적으로 불어나는 인건비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거나 고용을 줄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임금 인플레이션(Wage Inflation)이 한국 경제에 새로운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치솟는 집값, 임금 인상 촉발

高물가→高임금 악순환…만성 인플레 조짐
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상용근로자의 올해 3분기(7~9월) 월평균 임금 증가율(5.0%)은 분기 기준으로 2018년 1분기(7.9%) 후 가장 높았다. 임금이 뛰는 것은 치솟는 물가와 관계가 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0년(4.0%) 후 최고치인 2.4% 안팎을 기록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가계 씀씀이가 불어난 한편 공장 가동률·설비 투자도 회복되고 있다. 수요가 늘면서 원자재·제품 가격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폭등한 집값도 임금을 밀어올린 ‘촉매제’ 역할을 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 서울 부동산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17.6배로 집계됐다. 17년6개월 동안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의 집 한 채를 매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18년 말 14.3배, 2019년 말 14.5배, 2020년 말 16.8배로 매년 PIR은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뛰는 물가와 집값에 대응해 실질 구매력 수준을 유지하려는 가계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디지털화 속도가 빨라진 것도 임금 인상 배경으로 꼽힌다. 개발자·데이터분석가를 경쟁적으로 뽑는 인재 쟁탈전이 이어지면서 이들의 몸값이 폭등했다. 네이버가 올해 개발자 900명을 뽑은 것을 비롯해 카카오 넥슨 등 주요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연내 수백 명의 개발자 모집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부동산 플랫폼 스타트업인 직방은 경력직 개발자에게 최대 1억원 한도의 입사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했다.

여기에 MZ세대(밀레니얼+ Z세대)가 SNS를 통해 임금, 성과급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집단적으로 임금 투쟁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커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생산성 향상 없는 임금 인상이 단기적으로 기업 실적과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매년 불어나고 있다. 전체 국민소득에서 임금 등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20년에 67.5%를 기록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9년과 비교해서는 1.3%포인트 올랐다.

원자재 가격 등 뛰는 물가로 어려운 기업에 임금 상승 요구까지 겹치면서 재료비·인건비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거나 고용을 줄일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수요·공급 충격→물가 상승→고용 감소·제품 가격 인상→물가 상승’ 악순환 고리가 생겨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인건비 상승에 직면한 기업이 고용을 줄이면 가계 소득·씀씀이도 덩달아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급등) 우려로 치달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커지는 물가 상승 기대로 근로자·기업은 임금·제품값을 올릴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물가는 오르고 기업은 고용·생산량을 줄이면서 스태그플레이션 흐름이 굳어지기 때문이다. 업계 전반의 노동생산성을 높여 오름세를 보이는 임금과의 틈을 좁혀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털어내기 위한 가장 좋은 해법은 구조개혁 등 생산성 향상”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