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과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과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약 40년 전 네덜란드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업체 ASML 인수를 추진했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ASML은 현재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 을(乙)'로 통할 만큼 독보적 기술을 보유한 세계 1위 반도체 장비업체다.

2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최근 발간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30년사'에서 이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1992~1997년 반도체산업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김광호(81)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1982년 필립스가 삼성전자에 ASML(당시 ASM) 인수를 제안해 현지 실사를 위해 미국 본사를 찾았다"고 밝혔다.

ASML은 EUV를 이용해 5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회로를 새겨넣을 수 있는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전 세계 유일한 업체다. 초미세 공정 한계 돌파와 극복과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위해 필수 장비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 대만 TSMC 등 반도체 기업들이 이 장비 확보를 위해 줄을 설 정도다.

김 전 부회장은 "ASML은 당시 업력이 짧았고 삼성도 사정이 넉넉지 않아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세계 유일의 EUV 노광장비 구현 기술을 따져 보면 안타까움이 남기도 한다"고 회고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기준 이 회사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원로인 김 전 부회장은 "ASML이 세계적 반도체 기업으로 성공한 것처럼 반도체 원천 기술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남의 것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원천 기술로 반도체 시대를 선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전 회장 [사진=연합뉴스 ]
권오현 삼성전자 전 회장 [사진=연합뉴스 ]
반도체 원천 기술의 중요성은 삼성의 '반도체 초격차 신화'를 이끈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도 강조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술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찬밥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고 했다.

권 고문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30년사'에서 "미국이 삼성전자나 TSMC를 반도체 회의에 초대하고 미국 내 팹 투자를 주문하는 것은 기술 때문"이라며 "이들의 앞선 반도체 제조 능력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기술을 잃어버리면 찬밥 신세가 될 것"이라며 기술 리더십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국들의 '반도체 자립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어 "반도체는 국제 분업이 잘 이뤄져 왔고 우리나라는 반도체 제조 기술이 강하다. 주요 국가에서 반도체 자립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분업화가 쉽게 흔들리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유럽이나 미국도 반도체를 직접 다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면 언제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