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와 경제
ESG 시대, GDP 대체하는 총생산(GO)이 뜬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대인 요즘, 1990년대 이후 특정국의 경제 상황을 가장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인 ‘GDP(국내총생산, Gross Domestic Product)’가 한계를 노출함에 따라 새로운 소득추계 지표 개발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GDP는 자국 내 노동, 자본 등 모든 생산요소를 결합해 만들어낸 최종 부가가치의 합이라 제조공정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각종 소득지표는 특정국에 속한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 기간 새로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금액으로 평가해 합산한 것으로, 경제 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 거시경제지표다. 포괄 범위 등에 따라 국민총생산(GNP), 국내총생산(GDP), 국민순소득(NNI), 국민처분가능소득(NDI), 국민소득(NI), 개인가처분소득(PDI) 등으로 구분된다.

소득지표는 처음부터 특정국의 경제를 판단하는 절대 지표는 아니었다. 특정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측정하려는 시도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태동한 180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소득지표 논의가 구체화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로, 경제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점검하고 부양책을 쓰기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경제정책 추진에 공헌한 GDP

1937년 미국에서 GDP의 원조 격인 국민소득 통계가 처음 나왔으나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처음으로 개인과 기업, 정부의 생산 활동을 더해 특정국의 경제 규모를 판단하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후 GDP가 있었기에 정확한 국내생산 규모를 토대로 효율적 자원배분이 가능했고, 이를 토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시경제 분석의 초점이 소득 측면에 있었기에 GNP를 경제성장의 중심 지표로 삼았으나 1990년대 들어 글로벌화가 급격히 진전되면서 GDP의 유용성이 더 높아졌다. 1990년대 들어 GDP가 GNP를 대체하기 시작한 건 글로벌화 진전과 다국적 기업 때문으로 국제자본 이동과 기술 이전이 활발해지다 보니 ‘우리 국민이 얼마나 벌었나’를 보는 것보다 ‘우리 땅에서 얼마나 물건을 만들었나’를 보는 게 더 유용했기 때문이다.

각국도 경제성장의 중심 지표를 GDP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게 됐다. 유럽의 OECD 회원국은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은 1991년, 독일은 1992년, 일본은 1993년부터 GDP를 경제성장의 중심 지표로 삼았다. 한국은 이 같은 국제 추세에 발맞춰 1995년부터 경제성장의 중심 지표를 GNP에서 GDP로 변경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GDP 통계가 완전히 개발돼 널리 이용된 이후 경제 호황과 불황 폭이 훨씬 작아졌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GDP가 가장 크게 추락한 것은 1932년의 13.1% 감소지만, GDP 도입 이후 50년 중 가장 큰 폭의 하락은 2009년의 2.4% 감소에 불과했다.

GDP 통계가 개발돼 경제정책에 이용된 이래 과거와 같은 큰 폭의 경기순환은 사라졌으며 예금 대량 인출, 금융 공황, 깊고 장기적인 경기침체, 장기 실업 등도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 상무부는 GDP 통계라는 매우 유용한 경제지표를 장기간 제공함으로써 미국 경제의 안정화에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

1999년 12월, 당시 미국 상무부 장관이던 윌리엄 댈리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과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NEC) 의장이던 마틴 베일리 등과 함께 GDP 통계 편제를 20세기 경제 분야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했다. 더 이상 거시경제지표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특정국의 경제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핵심 지표로 자리 잡은 후에도 GDP에 대한 비판은 계속 제기되었다. 이른바 ‘삶의 질’ 논란으로, “국민의 행복은 GDP 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차원에서 새로운 지표가 많이 개발됐다. 대표적으로 1972년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부탄 국왕은 GNH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와 “GDP가 절대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해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이 논란이 지속되다 금융위기 이후부터는 국민 행복 차원에서 GDP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조지프 스티글리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등 석학을 초빙해 결성한 ‘스티글리츠위원회’가 대표적이다. “GDP가 올라가도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의 통계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삶의 질을 측정하는 새 지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점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경제지표 외 행복 GDP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논란의 배경에는 “GDP가 생산과정에서 불거지는 부작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깔려 있다. 경제가 성장하다 보면 환경파괴, 교통체증, 범죄율 증가, 소득 불평등, 테러 같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만 GDP는 이런 비용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EU의 일부 회원국을 중심으로 불법적 경제활동이나 지하경제를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영국은 갈수록 급증하는 성매매와 마약 거래를 GDP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분야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이탈리아도 영국보다 한 달 앞서 “약물, 성매매, 밀수 등을 GDP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영국과 유럽의 이런 논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반영하는 첫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중간 단계 많을수록 GDP와 GO의 격차 벌어져

ESG의 중요성을 소득지표에 처음 반영한 것은 2014년 4월 미국 상무부가 분기별로 처음 발표한 ‘GO(총생산, Gross Output)’다. GDP는 최종 생산재만 계산하다 보니 중간재가 오가는 기업 간 거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소비 비중이 너무 높아 경제정책에 혼선을 준다는 판단에서다. 중간재 생산까지 모두 합산하는 GO는 기업가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
비보다 저축과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같은 경제활동을 가늠하는 잣대인 GDP와 GO의 차이를 산에서 채취한 생나무로 가구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알아보자. 가구 제품을 만들려면 널빤지가 필요하고, 널빤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통나무, 통나무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나무, 생나무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숲에 나무가 있어야 한다. 이때 생나무와 통나무 그리고 널빤지는 최종적으로 가구 제품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중간재인데, GDP는 최종 소비재인 가구 제품의 가격만 따지지만 GO를 계산할 때는 생나무, 통나무, 널빤지, 가구 제품 가격을 모두 더해 산출한다. 다음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동일한 생산과정임에도 GDP로는 350만원인 데 반해 GO로는 950만원으로 중간 단계가 많을수록 GDP와 GO의 격차가 벌어진다. 이 때문에 GO는 ‘만드는 경제’ 즉 경제의 공급 측면을 잘 보여주는 잣대로 평가된다.

GO는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거래(B2C)뿐 아니라 기업 간 거래(B2B)를 반영할 수 있고, 각 중간재 생산 단계에서 물가와 고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중간 제조공정에서 ESG 이행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 실제로 GO를 산출해보면 전체 경제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GDP보다 훨씬 적음을 알 수 있다. 미국 GDP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0% 내외인데, GO 기준으로는 그 비중이 40% 밑으로 떨어지고 기업의 투자 비중이 50%가 넘는 걸로 나온다. 기업의 제조공정에서 환경오염 방지, 사회적 활동, 지배구조 준수 여부 등을 알 수 있다.

ESG 시대, GDP가 GO로 대체되고 경기순환의 진폭과 주기가 점점 짧아져 예측 환경이 달라지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경기 판단과 예측 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 이후처럼 경기 판단과 예측이 어려워지고 ESG가 강조될수록 각국과 예측 기관이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경기 판단 방안을 고안하기 위해 열을 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ESG 시대, GDP 대체하는 총생산(GO)이 뜬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