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S따라잡기
지난 6월 G7 정상회의에서 확대회의를 개최하는 모습
지난 6월 G7 정상회의에서 확대회의를 개최하는 모습
최근 대기업 직원들에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주제로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는 기업의 의사결정권자인 경영진이나 ESG를 전담하는 팀을 상대로 한 세미나가 주를 이뤘는데, 이 교육은 각 계열사에서 ‘구매’를 담당하는 임직원만 따로 모아 ESG를 주제로 실시한 직무교육이라는 점에서 신선했다.

교육을 진행한 곳은 우리나라 식품업계를 선도하는 굴지의 대기업이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을 갖춰 원자재에 해당하는 농산물 중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구매하고 있었다. 교육에 참여한 구매 직무 담당자들은 ESG의 기본 개념과 취지에 대해 대체로 잘 이해하고 있었고, 도입의 필요성을 대부분 공감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직무가 ESG 경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ESG 경영이 자신의 직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는 대부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육 준비 과정에서 이 부분을 예상하고 지금까지 해온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례와 자료를 제시하며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직무교육에서 가장 열띤 시간은 바로 ‘Q&A 세션’이었다. 구매 담당자들은 질의응답 과정에서 최근 들어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급속히 변하고 있는 실무자들의 분위기를 공유했다. 계열사를 불문하고 상당수가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서로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최근 변화 이유가 바로 공급망 ESG 때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있었다. 특히 해외 바이어로부터 요구 사항이 늘면서 원산지 공급업체에 대한 관리 부담이 점점 크게 다가왔다. 거래업체에 따라서는 아예 계약서를 새로 체결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구매 담당자들의 경험담을 통해 ESG가 더 이상 캠페인성 구호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서 거대한 조류로 형성되어 우리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 흐름에 대응하려면 경영진뿐 아니라 공급망 일선에서 일하는 구매 담당자에 대한 직무교육의 필요성도 절실해 보인다.

사실 이러한 공급망의 변화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인권침해를 근절하고자 공동으로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농업, 태양광산업, 섬유업에 대해서는 집중적인 모니터링 및 그 결과에 상응하는 제재가 가해질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늘어나는 해외 바이어 요구…공급망 ESG ‘비상’
사정이 이렇다면 이러한 공급망 내 변화에 대한 대응을 개별 기업에만 맡겨두기는 어렵다. 글로벌 팬데믹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공급망 ESG 관리 및 대응 실패로 인해 그간 지켜온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마저 흔들릴 경우, 우리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지난 8월 26일 정부는 ESG 경영이라는 숙제를 떠안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ESG 인프라 확충 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ESG 경영에 진입하게 될 중소기업까지 고려해 범부처 합동으로 K-ESG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리고 ESG 공시와 관련해 코스피 상장기업에 대해서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공시가 단계적으로 의무화된다.

특히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의 경우 지난 2019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 대해 공시가 의무화된 상태지만, 2022년부터는 자산 1조원 이상 기업에까지 의무공시 대상을 확대했다. 2024년에는 5000억원 이상 기업, 2026년에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가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또한 협력업체에 대한 ESG 경영 지원 관련 비용을 기업 연구·인력개발 세액공제 대상으로 추가한다. ESG 경영지원비는 기업이 협력사 임직원의 ESG 교육을 위해 지출하는 경비나 인건비로, 연구·인력개발 세액공제를 받으면 대기업의 경우 당기분 지출 비용의 최대 2%까지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이 밖에 중견기업은 8%, 중소기업은 25%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이 같은 혜택은 내년 조세특례제한법 시행규칙 개정 이후부터 적용된다.

아울러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ESG 실태 조사를 추진하는 한편, ESG 우수 기업에는 재정 사업 지원 우대 혜택을 비롯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처럼 정부의 ESG 관련 정책 방안은 우리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고 지원하는 내용도 있지만, ESG 공시처럼 기업에 부담을 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정부는 기업들이 현실에서 가장 절박하게 고민하는 ESG ‘평가 기준 및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ESG 평가 기준과 평가 방식을 정부가 먼저 제시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의 ESG 평가 기준과 평가 방식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걸쳐 확산되는 ESG 관련 요구 사항 중에는 우리 기업의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가령, 인종차별의 경우 해외에서는 기업의 경영진 인적 구성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업 현실을 고려할 때 아직은 인종차별은 중요 기준이 되지 않는다. 단지 기업의 경영진이 단일 인종으로 구성되었다고 해서 우리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것은 온당치 않다.

ESG라는 거센 파도는 글로벌 공급망 위에 서 있는 우리 기업에는 분명 위기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ESG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금처럼 각 기업이 신속히 ESG 경영 도입을 선언하고 기업 내부 및 협력사를 상대로 한 ESG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산업계, 학계, 정부가 뜻을 모아 ESG 관련 협의체를 구성해 우리 기업 현실에 맞는 ESG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만드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