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근로자가 고로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근로자가 고로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철광석을 녹일 때 쓰이는 제철용 원료탄(석탄) 가격이 연초 대비 3배 가량 치솟으며 13년만에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중국의 감산에 철광석 가격이 2개월만에 반토막난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이례적 '디커플링(탈동조화)'에 철강업계 뿐 아니라 조선, 자동차, 건설 등 철강제품 사용 비중이 높은 산업들의 '시계'도 흐릿한 상황이다.

○7월 이후 원료탄價 2배↑ 철광석은 반토막

2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호주산 제철용 원료탄 가격은 t당 409.55달러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이전 고점이었던 2008년 4월 수준(t당 403달러)을 13년만에 넘은 수치다. 한 달 전에 비해 80%, 연초 대비해선 295% 오른 가격으로 7월 이후에만 2배 가량 오르는 등 하반기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철광석 가격은 7월을 기점으로 폭락하고 있다. 같은 날 중국 칭다오항 철광석 가격은 t당 108.72달러를 기록했다. 20일엔 t당 92.98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 6월5일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반등했다. 지난 5월 12일 역대 최고치인 t당 237.57달러를 기록한 이후 7월 말까지 t당 200달러 수준을 유지하다 2개월만에 반토막이 난 셈이다.

철광석과 원료탄은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고로(용광로) 공법의 핵심 원료다. 국내 대표 철강사인 포스코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주요 철강국 제철소 상당수가 고로 기반이다. 쇳물 생산에서 철광석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 원료탄을 가공해 만드는 코크스의 비중은 20~30% 수준이다.

같은 철강 생산 원료인 원료탄과 철광석 가격이 따로 움직이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탄소중립’의 결과물이다. 탄소 배출의 주범 취급을 받고 있는 석탄은 되레 가격이 오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에너지 수요는 폭증하고 있지만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다보니 석탄, 액화천연가스(LNG)등 화석연료 기반 발전 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서다. 공급을 좌우하는 신규 광산 개발 프로젝트도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탈석탄선언에 상당수가 보류된 상태다.
철광석 '급락' vs 석탄 '역대 최고가 경신'에 산업계 '아리송'
철광석은 최대 철강 생산국인 중국의 감산 여파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내년 초 동계올림픽 개최를 중국은 당장의 대기질 개선과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올해 하반기 들어 대대적인 철강 감산에 나서고 있다. 8월 중국의 쇳물 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13.2% 급락한 8234만t을 기록했다. 하지만 8월까지 누적 생산량은 7억3000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5%가량 많은 상황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남은 4분기 중국의 감산 규모는 더 큰 폭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가격이 치솟은 석탄 공급 부족은 차차 해소되겠지만 전력 공급 부족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한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철강재 가격 향방 어떻게 될까…업계 '촉각'

철강업계뿐 아니라 조선, 자동차 등 산업계는 원료탄과 철광석 등 원료 가격의 급변동이 향후 제품 가격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철강업계는 원료 가격 급변동이 미치는 영향이 중립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원료탄 가격 상승이 철광석 가격 하락분을 상쇄하지만 내년 상반기 철강 제품 가격은 하락세를 보일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주요 수출처에서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전방산업 호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국 내 철강 감산으로 공급은 줄면서 제품 스프레드(제품가에서 원료가를 뺀 마진)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강판, 후판 등 철강 제품을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자동차, 조선 등 전방 산업 입장에선 원료탄 가격 상승이 달갑지 않다. 철광석 가격 하락으로 인한 철강 제품 가격 인하분을 원료탄 가격 상승이 상쇄하고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1대에 들어가는 원가 중 철강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 배 한척에 들어가는 비중은 20~30%에 달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미 향후 2~3년치 건조 계약을 맺어놓은 조선업계 입장에선 철강재 가격 하락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철강 원료 가격 변동이 제품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 중이다”고 말했다.

업계는 연말을 앞두고 원료 가격의 ‘키’를 쥐고 있는 글로벌 광산 업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세계 철광석 생산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발레는 최근 내년 생산량 예측치를 4억톤에서 3억7000만톤으로 조정했다. 중국은 내몽골 석탄 광산을 신규 허가하며 석탄 생산량 확대에 나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재 철강 원료 시장에선 기존의 시장 원리가 통하지 않고 있다”며 “당장 연말 상황을 예측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