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의 ‘종가집’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국내 포장김치 시장의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김치’가 출시 5년 만에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시장에서 종가집을 턱밑까지 쫓아왔기 때문이다. 소포장 ‘단지 김치’ 등을 앞세워 1인 가구와 2030세대를 공략한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B2B(기업 간 거래) 시장 등을 합치면 대상이 아직까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CJ제일제당이 시장 공략을 강화하면서 양사의 ‘김치 전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030 입맛 잡은 비비고…'종가집 김치' 넘본다

후발주자 ‘비비고 김치’의 반란

26일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CJ제일제당(비비고 김치, 하선정 김치)의 지난해 포장김치 시장 점유율은 37.5%로 집계됐다. 41.5%의 점유율을 기록한 1위 대상(종가집 김치)을 4.0%포인트 차이로 바짝 뒤쫓았다. 2018년 대상(46.0%)과 CJ제일제당(34.2%)의 점유율 격차는 11.8%포인트에 달했지만 2019년 5.0%포인트로 차이를 줄인 데 이어 지난해 격차를 더 좁혔다. 대상이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서면서 지난달 기준 격차는 다시 7.8%포인트로 벌어지는 등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포장김치 시장은 3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CJ제일제당은 대상보다 12년 늦은 2000년 포장김치 시장에 뛰어든 업계 후발주자다. 2007년 김치와 액젓 등을 판매하는 하선정종합식품을 인수한 뒤 본격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이미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하선정 김치’ 대신 CJ제일제당 자체 브랜드인 ‘비비고 김치’를 선보이는 모험을 감행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CJ제일제당만의 정체성을 담은 브랜드가 아니면 1위로 올라서기 어렵다고 판단해 비비고 김치를 새롭게 개발했다”고 말했다.

“MZ세대 잡아라” 경쟁 격화

비비고는 집에서 담근 김치보다 사먹는 포장김치가 더 익숙한 2030세대 소비자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CJ제일제당이 20세부터 65세까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한 결과 비비고 김치를 구입하는 소비자의 61.4%가 2030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기관 칸타코리아의 조사 결과에서도 비비고 김치는 독립가구(1인가구)·베이비(키즈)가구의 구매 비중이 43.3%에 달했다.

CJ제일제당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로는 소포장 제품이 꼽힌다. CJ제일제당은 대용량 포장김치 일색이던 시장에 소용량 ‘단지 김치’를 선보였다. 김치 소비량이 많지 않은 1인가구를 고려해 내놓은 제품이다. 김치를 따로 썰어 그릇에 옮겨 담을 필요가 없어 편리한 데다 신선한 김치를 필요할 때마다 사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상은 2030 소비자를 다시 끌어오기 위해 신제품을 내놓는 등 B2C 시장 전략을 재정비했다. 최근 ‘핵매운 김치’와 ‘마늘듬뿍김치’ 등 매운맛 김치를 선보였다. 젊은 층 사이에서 김치 등 매운 음식 먹기에 도전하는 콘텐츠가 유튜브 등을 통해 유행한다는 점에 착안한 제품이다.

CJ제일제당이 공격적인 할인 행사 등을 통해 대형마트 등 B2C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지만 대상은 위기감을 느낄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대상 관계자는 “홈쇼핑 판매와 수출 등을 더한 전체 포장김치 시장에서 실질적인 점유율 격차가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대상은 최근 해외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미국 김치공장 가동도 앞두고 있다. 한국 식품기업이 미국에 김치공장을 세우는 것은 대상이 처음이다. 대상 관계자는 “과거 한인마트나 한인식당 등에서만 김치를 찾았다면 최근에는 김치를 먹는 현지인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