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미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맞은편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 두번째),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세번째) 등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
미국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미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맞은편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 두번째),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세번째) 등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건설을 공식 발표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21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서 "1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투자를 계획 중"이라며 "양국 경제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기술(IT)산업 발전에도 대단히 중요한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며 "굳건한 한미동맹을 통해 미국 기업과 동반성장하며 혁신에 활로를 찾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투자 계획이 담긴 문서가 공개된 적은 있지만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공식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투자 지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 10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이상 파운드리 생산 라인을 가동 중인 텍사스 오스틴 공장 인근에 증설하는 게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공장 건설 지역은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TSMC 40조원 미국 투자, 삼성전자는 19조원 투자로 대응

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 신·증설 얘기는 2~3년 전부터 꾸준히 나왔다. 텍사스 오스틴 현지 언론에선 '삼성전자가 공장 부지를 매입했다'는 기사가 때마다 보도됐다.

본격화한 건 올 초부터다. 지난 1월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WSJ) 같은 경제 전문 매체들이 ‘삼성전자가 1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미국에 최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증설할 것’이란 보도를 쏟아냈다. ‘170억달러 투자’ ‘2022년 가동’ 같은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됐다.

삼성전자의 공식 답변은 “투자와 관련해 결정된 게 없다”는 것이다. 부인도 인정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였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결국 미국에 투자를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우선 대만 TSMC의 미국 진출이 꼽혔다. TSMC는 지난해 120억달러(약 13조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5㎚(나노미터, 1㎚=10억분의 1m)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완공 시기는 2024년이다. 최근엔 투자액을 대폭 늘려 3nm 공장을 계획 중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공장 건설 규모는 총 6개로 총 투자액은 40조원에 달한다는 대만 현지 기사도 나왔다.

파운드리는 생산시설이 없거나 부족한 반도체 기업들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납품하는 사업이다. 주요 고객은 퀄컴 AMD 엔비디아 같은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기업)다. 최근엔 미국의 종합반도체기업(IDM) 인텔까지 파운드리 이용을 확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 본토에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 TSMC의 최신 공장이 들어서면 미국 업체들의 주문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전경. 한경DB
삼성전자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전경. 한경DB
삼성전자는 텍사스 오스틴에서 현재 파운드리 공장을 가동 중이다. 1998년 양산을 시작했는데 14㎚ 공정을 주력으로 한다. 범용 제품을 생산하는 데엔 문제가 없지만 최신 반도체 주문을 따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정부의 ‘당근책’도 만만치 않다. 미국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 일자리 창출 등을 내세워 시스템 반도체, 5세대(5G) 통신 등과 관련한 첨단 공장을 본토로 유치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처럼 투자를 공식화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삼성전자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대규모 파운드리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미국 증설 급할 것 없는 삼성전자...평택에도 대규모 파운드리 투자

김기남 부회장이 "조만간 좋은 소식이, 구체적인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후보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해 '아직 협상 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안팎에선 '공장을 짓는 지역이 당장 공개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 뉴욕, 애리조나주와 인센티브 규모 등을 놓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지난 1월 텍사스 오스틴 시에 86억달러(약 9조7000억원) 규모 경제적 효과를 앞세워 인센티브를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며 오스틴과 트래비스카운티 정부에 '세금 감면'을 요청했다. "19조원 규모 투자로 10조원 가까운 경제적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으니 세금을 깎아달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세금 감면 기한을 20년으로 제시했다. 20년 간 감면해달라고 요구한 세금은 '8억547만달러'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9070억원 정도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지방정부와의 협상을 급하게 마무리 지을 필요도 없다. 경기 평택 2공장과 3공장 등에 최첨단 파운드리 라인을 짓고 중장기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워놨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뉴욕, 애리조나 등과는 오스틴보다 더 많은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꾸준히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애리조나와 관련해서 공장 후보지로 꼽혔던 땅의 경매가 지난 19일 유찰되면서 "삼성의 투자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땅은 지난달에도 한 차례 유찰됐다. 다음 경매 일정은 6월 10일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공장 후보지는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며 "아직까지 미국 지방정부들과 논의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