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경훈 기자 / 그래픽=이정희 기자
사진=신경훈 기자 / 그래픽=이정희 기자
기분 좋은 나무 냄새가 났다. 얇은 등나무 줄기가 손에 닿는 감촉도 좋았다. 위로 아래로 줄기를 하나씩 뒤틀어 엮었다. 같은 움직임의 반복. 잡념이 사라졌다. 창밖의 시끄러운 소리도 이내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선이 모이자 점차 면의 모양을 갖춰갔다. 긴 등나무 줄기는 어느새 동그란 꽃 모양의 티코스터(컵받침)가 됐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마이데이라탄에서 경험한 짧은 라탄 공예 후기다.

친환경 바람 타고 인기 역주행

라탄 공예는 철사처럼 가늘게 뽑은 등나무 줄기를 엮어 실생활에 필요한 소품을 만드는 공예다. ‘환심’이라고 불리는 나무줄기를 손으로 엮어 여러 가지 패턴을 반복해서 이어가면 작품이 탄생한다. 만드는 과정이 뜨개질과 비슷해 ‘나무로 하는 뜨개질’이라고도 한다.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다보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시간을 엮는 공예’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간 라탄 공예품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오는 ‘필수 기념품’ 정도로 인식됐다. 동네 골목에 라탄 공예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지는 3~4년 정도 됐다.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자 라탄 공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1980년대 후반께 국내에서 라탄 공예가 한 차례 인기를 끌었다. 당시 동남아 등에서 들여오던 라탄 공예 재료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다. 최근 재료 공급이 원활해진 데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라탄 공예의 인기가 다시 높아졌다.

상처를 치유하는 취미

라탄 공예의 매력은 무엇일까. 라탄 공방 마이데이라탄에서 만난 수강생들은 “예쁜 게 최고 매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인정 마이데이라탄 대표는 “공방을 찾는 사람 대부분은 아름다운 패턴으로 구성된 완성품 사진에 반해 라탄 공예를 배우러 온다”고 했다.

‘외모’에 반해 시작한 라탄 공예의 진짜 매력은 줄기를 손으로 하나하나 엮다보면 느낄 수 있다. 반복되는 패턴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다보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줄기를 성기게 엮으면 완성품의 모양이 틀어진다. 모든 정신을 손끝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트레스에서도 해방된다. 그래서 라탄 공예 마니아들은 ‘평온함’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김 대표는 “몸이 아프거나 극심한 육아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수강생들도 라탄 공예를 할 때만큼은 고통을 잊는다고 한다”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취미”라고 말했다.

실용성도 높다. 라탄 공예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티코스터와 쟁반, 바구니는 물론 피크닉 가방, 의자, 서랍장까지 가능하다. 얇은 나무줄기로 된 제품이지만 여러 줄기가 모여 플라스틱 못지않게 튼튼하다.

김 대표는 “물에 젖은 등나무 줄기는 이리저리 휘지만 수분이 빠지면 딱딱한 나무의 원래 본성을 되찾는다”며 “줄기를 엮어 만든 의자는 성인 남성이 앉아도 끄떡없을 정도”라고 했다.

초보자가 도전하기도 쉽다. 라탄 공예는 기본적으로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몇 가지 패턴만 익히면 무한대로 응용할 수 있다. 예컨대 티코스터를 만들 때 배운 패턴을 입체적으로 여러 개 이으면 바구니가 된다. 티코스터는 라탄 공예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두 시간만 배우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손재주가 있는 편이라면 간단한 수납 바구니를 하루 만에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