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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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부동산) 보유세는 높여야 한다. 1가구 1주택 장기거주 은퇴자들에겐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대권 행보에 나서고 있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총리 시절인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한 말이다. 1주택 보유자마저 종부세 부담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정책 수정이 필요하다는 야당의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발언이었다.

종부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정 전 총리의 입장은 5개월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정 전 총리는 21일 언론 인터뷰에서 "종부세는 부유세 성격을 갖고 있는데, 중산층은 부유층이 아니다"라며 "(종부세 과세 대상이 중산층까지 확산되는) 그런 부분을 잘 봐야 했는데, 소홀했다"고 고백했다. 국민의 종부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여당의 참패로 끝난 지난 4·7재보궐 선거에서 부동산 민심에 놀란 정 전 총리가 입장을 바꿨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전 총리뿐만이 아니다. 종부세를 바라보는 여권 잠룡들의 시각이 선거를 전후로 일제히 달라지고 있다.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20일 "주택 정책의 핵심은 (주택을) 실거주용이냐, 투기 수단이냐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라며 "실거주용이라면 2주택자라고 해서 제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두 채 이상 집을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해 종부세를 중과하며 세금을 높여왔는데, 이 지사는 '실거주용'이라는 조건을 달고 2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완화를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지사 역시 이번 재보궐 선거 전까지만 해도 다주택자에 대한 강력한 세금 정책을 주문해왔다. 이 지사는 지난해 12월 3일 개인 SNS에 "실거주 1주택자는 (세금을) 감면해 보호하고, 투기로 과대 이익을 취하는 다주택자에 대해선 강력하게 과세해야 한다"고 썼다. 지난해 10월에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 대한 제재 정책이 중요하다"며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강화를 주문했다.

민주당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제21대 총선을 전후로 종부세에 대한 입장이 달라졌다. 이 전 대표는 총선 직전인 지난해 4월 2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주거 목적 1세대 1주택에 대한 과도한 종부세 부과는 법 취지와 맞지 않다"며 "1가구 1주택자나 실소유자, 뾰족한 소득이 없는 경우엔 현실을 감안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총선이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나자 이 전 대표의 발언은 달라졌다. 그는 민주당 대표로 재직하던 지난해 10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종부세에 손 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종부세 개편 논란에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여당 대선 주자들이 선거를 계기로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바람직하지만, 표심에 휘둘려 섣불리 정책을 내놓으면 부작용만 심해질 것이라 경고했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최근 민주당에서 거론되고 있는 부동산 대책은 선거 패배 이후 급조된 느낌"이라며 "부동산 정책은 호흡을 길게 갖고 다른 나라의 사례 등을 면밀히 살펴보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