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제동 걸린 '용진이형'의 청라 돔구장
SSG 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프로야구 개막전이 우천으로 취소됐던 지난 3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돔구장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다고 한다. ‘글로벌 10위(지난해 GDP 기준) 경제 강국이자 올림픽 정식종목인 야구로 금메달까지 따낸 한국에서 비 때문에 개막전 경기를 못 하다니….’ 정 부회장은 후진적인 국내 스포츠 인프라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용진이형’의 돔구장 건설 계획은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 때문에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체육시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만이 지을 수 있다는 법규와 관행 탓이다.

법령·규제에 막힌 ‘야구 빅피처’

청라 스타필드 조감도. 신세계그룹은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를 인수하며 인천 청라에 스타필드와 함께 첨단 돔구장을 짓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뉴스1
청라 스타필드 조감도. 신세계그룹은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를 인수하며 인천 청라에 스타필드와 함께 첨단 돔구장을 짓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뉴스1
지난 3월 신세계그룹은 SK텔레콤으로부터 프로야구단을 인수하면서 청라 돔구장 건설 포부를 밝혔다. 처음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신세계는 인천 청라에 소유하고 있는 16만5290㎡의 땅에 복합쇼핑몰과 함께 첨단 돔구장을 짓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초 SNS에서 “(청라 돔구장 건설에 관해) 현재 법령을 검토 중”이라고 말하는 등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 부회장의 ‘비전’에 재계와 스포츠계가 들썩였다.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민간이 소유한 땅에 체육시설을 짓겠다는 시도는 신세계가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프로야구·축구단이 사용 중인 56개 경기장 중 민간 소유는 포스코 광양, 포항 축구 경기장 단 두 곳이다. 포스코가 과거 공기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민간 소유는 ‘제로’다.

하지만 첫삽을 뜨기도 전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그룹 내 신세계프라퍼티 등의 전문가들이 관계 법령을 분석해보니 개별 기업이 돔구장을 짓기까지는 첩첩산중의 난관을 뚫어야 할 판이다. 청라 돔구장 건설과 관련된 법률은 ‘도시·군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이다. 99조 1항은 체육시설 설치 주체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 명시하고 있다.

7항에 ‘국민의 건강 증진과 여가 선용에 기여할 수 있는 종합운동장(관람석 1000석 이상)’을 민간이 지을 수 있다고 여지를 열어놓기는 했다. 하지만 단서가 달려 있다. ‘국제경기종목으로 채택된 경기를 위한 시설 중 육상경기장과 한 종목 이상의 운동경기장을 함께 갖춘 시설 또는 3종목 이상의 운동경기장을 함께 갖춘 시설로 한정한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야구 전용 돔구장 외에 추가 시설을 지어야 민간의 체육시설 소유 및 운영을 허용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며 “7항의 요건을 못 맞춘다면 돔구장을 짓더라도 10~20년 운영한 뒤 부지를 포함해 모든 시설을 지자체에 기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묘수 찾겠다”는 신세계

신세계그룹은 법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해법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그룹 관계자는 “돔구장은 건설에만 약 5000억원이 들어가고, 연간 유지 비용도 2000억원 안팎에 달한다”며 “민간 기업의 체육시설 소유와 운영이 허락된다면 투자 및 운영에 필요한 기본 비용을 제외한 이익금은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인천시로선 당장 청라 돔구장이 지어지면 현재 SSG 랜더스가 사용하고 있는 문학 구장(SSG랜더스필드)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거리다. 정부 관계자는 “인천시는 문학 구장이 유휴 시설이 될 것을 우려해 돔구장 건설에 난색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신세계의 청라 돔구장 건설 계획이 무산될 경우 정 부회장이 구상하고 있는 스포츠 마케팅 전략에도 난관이 예상된다. 신세계 관계자는 “문학 경기장에서 연중 경기가 열리는 날이 70여 일에 불과하다”며 “야구 경기장 최초로 스타벅스를 입점시키고, 노브랜드 버거 등 신세계가 갖고 있는 브랜드들을 선보이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점포가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