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원 디홀릭커머스 CFO
강정원 디홀릭커머스 CFO
필자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로 이동을 원하거나, 스타트업으로부터 CFO 자리 제안을 받아 고민하고 있는 지인들로부터 종종 상담요청을 받는다. 필자가 이 분야에서 역량이 뛰어나서는 분명히 아닐테고, 아마 나이가 많거나 사람들의 얘기를 편하게 잘 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비 CFO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막상 해주고 싶은데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빙빙 둘러서 답변을 해주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필자가 경험해본 스타트업 CFO의 역할과 예비 CFO들이 생각하는 그것 간에 괴리가 큰 점도 있고,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가 생각하는 CFO 인재상과 예비 CFO들의 실제 업무 경험이나 역량, 자세의 괴리가 큰 점도 한몫 한다.

오늘은 필자가 그 동안 경험적으로 알게된 CFO의 필요한 역량과 자세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물론 필자가 다이나믹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아주 일부만을 경험해봤고,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본 글이 CFO 자리를 고려하는 예비 CFO들께 조금이나마 도움과 각성(?)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한 CFO를 찾고 있는 CEO분들께도 예비 CFO들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참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미약하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첫 번째 버려야 할 대상: "내가 바로 전문가"라는 생각

그렇다, 맞다. 여러분은 전문가다.

보통 예비 CFO 후보가 되는 분들은 회계법인 출신의 회계사이거나, 증권사 투자은행(IB)에서 자본시장을 경험한 증권맨, 뱅커일 것이다. 아니면 벤처캐피털(VC) 혹은 사모펀드(PE)에서 발행시장을 경험했거나,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또는 증권사 리서치의 애널리스트로서 상장기업 분석과 유통시장을 경험한 전문가다. 또는 컨설팅 업체에서 경영분석과 딜(deal), 실사(DD)를 경험한 전문가이거나, 지금은 드문 경우가 됐지만 은행 등의 금융권에서 기업금융을 경험한 전문가, 대기업 재무 출신의 재무통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각 예비 CFO 후보들의 그 전문성은 CFO에게 필요한 수십가지의 역량 중 단 하나일 뿐이다. 물론 위에 언급한 수십가지의 역량을 모두 보유한 예비 CFO 후보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끊임없이 배우는 자리라는 인식이다. 이는 CFO 자리에 대해 좀 더 현실성 있는 고민과 진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필자는 CFO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의한다. 'CEO의 사업 목표를 계획대로 추진하고 달성하기 위해 현금흐름을 관리하고, 현금흐름 기반의 의사결정을 하는 자'. 간단해 보이지만 이 안에 다양하고 복잡한 업무들이 포함된다. 한번 상상해 보자. CEO는 (대체적으로) 직관적이고, 추진력 있고, 성격이 급하다. 그래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있다. 기술개발이 안 끝났는데 공장을 지으려 하고, 플랫폼 출시가 한참 남았는데 광고를 하려고 한다.

시너지가 있을 것 같은 회사가 있으면 덥석 인수하려 하기도 하고, 좋은 인재가 있으면 당장 채용하려 할 때도 있다. 속도를 우선시한 나머지 면밀한 법적 검토나 계약서 검토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 관심 있는 투자자가 있으면 자금계획에 관계없이 투자를 받으려고도 한다. 물론 이러한 CEO의 경영방식이 틀린 것 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동안 많은 CEO분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사업적 직관과 추진력으로 큰 성과를 내는 경우들을 자주 목격하며 감탄해 왔다. 하지만 여기에 CFO의 숫자·팩트 기반의 분석과 의견이 들어간다면 훨씬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사업리스크 헤지가 가능할 것이다.

회사의 단위 경제(unit economics)는 어떠하며, 무엇을 개선하면 손익과 현금흐름이 좋아질까. 왜 지금 투자를 해야 하고, 규모는 얼마가 합리적인가. 수익이 발생할 때까지 '태워야 하는' 현금(cash-burning)은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버틸 것인가. 최악의 경우 경제적 손실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인가. 계약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방어(protection)할 것인가.

지배구조 변화와 인수합병(M&A) 등에서 세무적 리스크(위험)는 무엇인가. 자금이 필요하면 언제 어떤 밸류로 어느 정도 규모의 투자유치를 누구에게 진행할 것인가. 기업설명회(IR) 때 어떤 핵심성과지표(KPI)를 강조할 것인가. 비싼 자본조달(equity funding)보다 저렴한 부채조달(debt financing) 방법은 없는가. 어떤 프로젝트를 먼저 진행할 것인가. 외형성장이 우선인가, 수익성 확보가 중요한가. 그 접점은 어디인가. 사업을 위해 어떤 팀이 필요하며 언제 어떤 규모로 그 팀을 꾸리는 게 맞을까.

이러한 의사결정을 위해 CFO는 강한 회계적 지식과 현금흐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위에 든 예시들은 이른바 'FP&A'라고 하는 관리회계의 영역이지만, 이는 재무회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기반으로 할 뿐만 아니라 회사의 사업과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또한 비용 통제 및 개선을 위해서는 각 분야(이를테면 연구개발, 마케팅, 영업, 구매, IT개발 등)의 기본적인 업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자금 유치를 위해 VC·PE 네트워크, 은행과 튼튼한 관계 유지도 필요하다. 아울러스타트업에서 인건비를 포함한 인사관리는 중요한 원가동인이기 때문에 인사에도 깊이 관여해야 하고, 계약조건과 법률, 세무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다. 리스크 관리가 안될 경우 이것들이 모두 경제적 손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CFO는 레이싱에 출전한 CEO가 속도 조절과 핸들링을 잘 할 수 있도록 적극 개입해야 하는데, 돈과 관련된 모든 영역을 커버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CFO의 포지션닝은 역설적이게도 ‘항상 CEO와 대립하지만, 그로 인해 CEO가 편안함을 얻는 자리’다.

2. 두 번째 버려야 할 대상 : "그래서 나는 많이 받아야 한다"는 생각

사실 예비 CFO들이 가장 많이 관심 갖는 부분은 본인의 가치다. CFO 자리로 옮길 때, 연봉은 어느 정도 수준이고, 지분이나 스톡옵션 같은 패키지는 어느 정도 요구하면 되는지를 궁금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공통점이 하나 있다. 본인이 지금 받는 연봉 패키지와 유사한 수준 혹은 그 이상을 기대(대부분 전문직이라 연봉이 높다)하면서 추가적으로 (많은) 지분이나 스톡옵션까지 원한다는 점이다. 이는 스타트업에 조인하면서 하방 리스크를 방어한 상태에서 업사이드만 챙기는 콜옵션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위험한 생각이다.

우선 이러한 접근은 CEO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CEO는 말 그대로 그 회사의 기반을 세운 사람(founder)으로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창업을 해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건너 온 사람이다. 초기에는 월급을 받지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초기 자본금 외에 본의의 사재를 털거나 본인의 신용을 이용하여 자금을 투입했을 것이다. 물론 사업이 성공할 경우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지분가치를 얻을 수 있겠지만, 이것은 그가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떠안았기 때문에 돌아오는 보상이다.

따라서 CEO가 바라는 CFO 인재상은 어떠한 리스크도 지지 않은 채 고귀한 모습으로 일할 사람이 아니라 리스크를 함께 짊어지면서 회사를 키워 보상을 공유할 의지와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필자는 founder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어 추측할 뿐이다). 첫 만남에서부터 하방리스크를 너무 강조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인상을 준다면 CEO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게다가 CFO는 기본적으로 비용과 손익을 관리하는 사람인데, 스타트업의 인건비 예산은 한정적이다. 본인 연봉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후하다면(물론 입사 전이지만) 이 CFO가 과연 다른 비용 관리를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두 가지 중 하나이다. 본인 연봉뿐만 아니라 모든 비용에 대해 너그러운 성향이거나, 혹은 본인은 챙길 것을 다 챙기고 다른 임직원의 연봉은 박하게 통제하는 이율배반적인 성향이거나. 전자든 후자든 CFO로서 자격은 의심된다.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신입직원에서 CEO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원이 기회비용과 리스크를 떠안을 수 밖에 없는 조직이다. 많은 것을 얻고 싶다면 눈앞의 보상보다는 회사가 성공했을 경우에 얻을 수 있는 보상에 더 집중하자.

3. 세 번째 버려야 할 대상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옳다"는 생각

유능한 예비 CFO들이 스타트업에 조인한 후 적응에 실패하여 몇 개월 안돼 그만두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는 업무적응 실패 보다 조직 구성원과의 융화에 실패한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어떤 스타트업 조직이든 창업자와 함께 회사를 설립하고, 초기사업을 함께 추진해온 '창업 멤버 조직'이 있다. 회사가 커지면서 기존 멤버로 한계에 부딪치면서 CEO는 여러분과 같이 경험 많고, 역량 있는 CFO를 채용하여 관리와 성장을 도모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기존 멤버들은 여러분을 표면적으로 환영하지만, 속내는 복잡하고 경계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CEO의 머릿속은 더 복잡하다. 기존멤버들과 신임 CFO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조직의 분열이 생길 수 있고, 사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성지수(EQ)가 떨어지는 CFO는 ‘이것은 원칙에 어긋나고, 이것은 잘못되었고, 이것은 이렇게 하면 안되고, 다른 회사는 이렇게 안하고’ 등등 기존멤버들과 회사가 그 동안 이뤄놓은 것을 모두 부정하게 되고, 이는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CEO는 머리로는 여러분을 신뢰할 지 몰라도, 마음으로는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기존멤버를 신뢰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방식의 문제이다. CEO와 기존멤버들은 창업 때부터 생사를 가르는 죽음의 계곡을 함께 건너온 역전의 용사들이다. 그 당시 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의사결정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한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던 게 최선일 수 있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실전이지 사무실에 앉아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는 책상놀음이 아닌 것이다. 기존 멤버들이 긴 세월 동안 척박한 환경에서 눈앞의 전투를 치르느라 멀리보지 못했다면, 이제는 큰 전투를 대비하여 여러분이 회사의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회사의 변화를 추진하기에 앞서 CEO를 포함한 기존멤버들과의 인간적인 신뢰를 쌓는 게 우선이다.

기억하자. 내가 물을 마실 때는 '내 앞에서 먼저 우물을 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필자소개] 강정원 디홀릭커머스 전무는 화학을 전공했다. 신약합성으로 석사를 하고, LG화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진로를 바꿔 회계사로 전직했다. 이후 증권회사로 옮겨 테크섹터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중 바이오씨앤디에서 CFO 업무를 시작했다. 마켓컬리 CFO를 거쳐 현재는 일본과 중국 크로스보더 온라인플랫폼을 운영하는 디홀릭커머스에서 CFO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