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인상 안돼" 원칙 깬 文정부 한마디에 벌어진 일 [이지훈의 산업 탐사]
올해 전기료 인상폭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 정부와 한국전력이 아직 결정을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정부가 임의로 조정하면서 생긴 일이다. 원가 변동분을 전기료에 곧바로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가 제도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한전이 3분기와 4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폭을 최대 6원/kwh까지 허용할지, 5.2원/kwh로 제한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내부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는 지난달 22일 정부가 연료비 연동제가 정한 기준을 깨고 ‘물가안정’ 등의 이유를 들어 2분기 전기료 인상을 막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전기료 책정에 기준이 되는 값으로 연료비 변동을 감안해 산출한다.

지난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는 -0.2원/kwh으로 계산돼 1분기(-3원/kwh)보다 kwh당 2.8원 인상되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가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도 1분기와 같은 -3원/kwh로 동결하면서, 3분기 조정단가 인상 기준점을 -3원/kwh로 할지 -0.2원/kwh로 할지 아직 결정을 못한 것이다. 연료비 연동제는 전분기 대비 연료비 조정단가를 최대 kwh당 3원을 인상 또는 인하할 수 있고, 연간은 최대 5원을 인상 또는 인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준에 비춰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기준을 -3원/kwh로 하면, 3분기와 4분기 각각 3원/kwh씩 인상이 가능하다.

반면 2분기 기준을 -0.2원/kwh로 하면, 3분기엔 kwh당 3원을 올릴 수 있지만, 4분기엔 연간 최대 인상폭인 5원/khw를 넘을 수 없어 kwh당 2.2원까지만 인상이 가능하다. 연간 연료비 조정단가 1원/kwh당 한전 이익은 약 5000억원 변동할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연료비 조정단가 산출 기준은 한전 이익폭과 전기료 인상·인하 폭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변수다.

올해 초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는 연료비조정요금과 기후환경요금을 분리해 전기료에 반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기존 요금 체계는 유가 등의 원가 변동분을 적시에 요금에 반영할 수 없어서 한전 적자의 주 원인이 돼 왔다. 실제로 2013년 11월 이후 전기료는 7년 넘게 인상되지 않았다. 새 제도는 기준연료비(직전 1년간 평균연료비)에서 실적연료비(직전 3개월 평균연료비)의 차액에 사용전력량을 곱해서 연료비 조정단가를 산출한 뒤 이를 전기료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올해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서두른 것은 에너지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올해 상반기에만 전년 대비 1조원의 전기료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게 정부이 판단이었다. 전기료 인상에 따른 가격저항을 막으면서 원가 연동 제도도 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봤던 것이다.

그런데 한파 등의 영향으로 올 들어 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했고,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전기료도 인상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정부는 ‘단기간 내 유가 급상승 등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가 요금 조정을 유보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전기료 인상을 막았다.

하지만 정부가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자마자 원칙을 깨고, 연료비를 인상을 막은 것은 제도 정착에 큰 혼선을 주고 있다. 그 결과가 아직 올해 연료비 인상폭 기준도 마련하지 못한 전기요금 체계다. 이러다보니 연료비 연동제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또한 커지고 있다.

실제 정부는 2011년에도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다가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포기한 전력이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전기료 인상 기준을 놓고 갈팡질팡하면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전기료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도 하루 빨리 제도 정비가 완료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