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한 밭에 묘목들이 심어진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3일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한 밭에 묘목들이 심어진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농지 투기가 허술한 농지법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농지법을 위반할 경우 농지 처분의무가 부과되지만 '농사짓는 척'만 해도 손쉽게 유예가 가능해 실제 처분 명령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10%대에 그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처분 명령 유예를 한정적으로 적용해야 이같은 투기 수요를 잠재울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15일 농림축산식품부의 전국농지이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농지법을 위반해 농지 처분 의무가 부과된 1만1641명 중 이듬해인 2018년 실제 처분 명령을 받은 사람은 1310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사를 짓지 않거나 불법 임대차 등으로 농지법 위반 혐의가 드러난 사람 중 11.2%만이 실제 농지를 처분하도록 조치된 것이다.

이는 농지 처분명령의 유예 조항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농지법을 위반할 경우 실제 농지를 처분하는 데까지 최소 1년에서 길게는 3년 이상 걸린다.

농지법 10조에 따르면 농지를 정당한 사유 없이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으면 처분 의무가 부과된다. 휴경이나 임대차 등이 해당한다. 주말 및 체험영농에 쓰기로한 농지를 목적에 맞게 쓰지 않거나, 농지 취득자격을 상실한 농업법인이 3개월 이상 농지를 그대로 갖고 있는 경우,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은 경우 등도 처분 의무 부과 대상이다.

농식품부는 지자체와 함께 매년 하반기에 진행하는 전국 농지이용실태조사에서 이같은 위반 사항을 적발한다.

처분 의무가 부과되면 소유자는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년 이내에 해당 농지를 처분해야한다. 1년이 지나도 처분하지 않으면 처분 명령이 내려지고, 명령 후 6개월간 처분이 완료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붙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처분명령을 유예하는 조항이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처분 의무가 부과된 후 1년 이내에 농사를 다시 짓는 시늉을 하면 우선 처분명령이 유예된다. LH 사건 처럼 묘목을 심는 정도로도 처분명령이 유예된다. 이후 3년간 농사를 계속 지을 경우 처분 의무가 아예 취소되는 식이다.

처분명령 유예 제도는 2006년 농지법 개정으로 신설됐다. 당시 유예 없는 처분 명령이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에 따라 법이 개정됐지만 규제 완화로 인한 부작용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농지처분명령 운용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제도 시행 전인 2006년 기준 처분 명령 비율은 59%에 달했지만 제도가 시행된 직후인 2007년 21%로 급락했다.

농식품부는 처분 유예 조항이 투기를 부추긴다는 지적에 대해 해당 조항은 시장·군수·구청장의 재량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투기 등 범죄 혐의로 인한 처분명령에는 유예조항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LH 사태 등 투기 목적의 농지 매매가 적발될 경우 유예 없는 처분명령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법률 전문가들에게 검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번 조사에서 LH 직원들의 농지 매매와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의 연결고리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을 경우다. 이 경우 법 위반으로 농지 처분명령을 내릴 수 없고 기존의 휴경과 임대차 등에 따른 처분명령 절차를 밟아야한다. 이 경우 해당 직원들이 농사를 다시 제대로 짓겠다고 하고 농사를 짓는 모습을 연출한다면 농지 처분을 강제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