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 PEF썰전-"거울아, 거울아, CFO 몸값은 얼마니?"
바야흐로 춘삼월 봄이 왔다. 애들은 학교를 가고, 처녀 총각들은 소개팅 일정을 잡고, 골퍼들은 창고에 누워 있던 클럽을 꺼내고,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기업인들은 연봉협상 자리에 앉는다.

그럼 사모펀드(PE)에 있는 사람들은 뭐가 다를까? 기업들이 통상 이런 연봉협상을 연간 행사로 한다면, 나의 경우에는 1년 365일 연중 무휴라는 점이다. 매년 돌아오는 연봉과 보너스 결정에 더해, 회사와 펀드가 커질수록 주구장창 팀원들과 새로운 경영진들을 뽑아대야 한다. 어떨 때는 대기업 인사팀장이 된 건 아닌지 착각마저 들 정도다. 특히 요즘은 포트폴리오 회사의 팀장, 부장까지 (최근에는 차장급까지도!) 직접 면담을 해서 뽑아 달라고 하다보니 정말 다양한 연령과 배경의 분들의 ‘몸값’에 대해 알게 된다.

자, 각설하고 이제 천기누설의 시간이 왔다. 그럼 도대체 PE들은 어떻게 (PE와 핵심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피투자회사 CFO의) 몸값을 협상하는가? 각 펀드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지난 십수년 동안 CFO 후보자들과 몸값 협상을 해 본 결과 협상장에서 처음 언급하는 내용에 따라 후보들의 성향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지금 회사에서 (혹은 전에 있던 회사에서) 얼마를 받고 있으니 이거 플러스 얼마 더 주세요”를 제시하는 유형이다. 두 번째는 “회사가 성공적으로 엑시트를 하면 나는 얼마나 벌 수 있나요”를 묻는 유형이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컨설팅 회사에서 몇 년간 트레이닝을 받고, 유학도 갔다오고, 국내 10대 기업에 속하는 X그룹에서 M&A와 포트폴리오 관리 업무로 몇 년간 경력을 쌓은 A씨가 있었다. 필자는 A씨를 학교 때부터 알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꼼꼼하고 인품이 좋아서 잘 훈련만 시키면 CFO 후보로 적격이라고 수년간 생각해왔다. X그룹에서 어떤 경험을 쌓는지 가까이 지켜보면서 A씨를 업어올 기회를 바라본 지 3년 정도 되었을까, 마침 그 그룹이 다소 힘들어지면서 이 친구에게도 이직의 생각이 싹트게 되었다. 인생은 타이밍 아닌가? 잽싸게 당시 투자 검토 중이었던 Y사의 재무이사 자리를 제안했다.

그런데 이게 웬말인가? 돌아온 답변은 “연봉은 얼마나 더 받을 수 있을까요? 좀 생각해볼께요”였다. 대기업의 따뜻한 품 속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기본급)과 법인카드에 길들여진 A씨에게 PE라는 정글은 너무 낯선 곳이었던 것이다. A씨는 결국 20대 기업에 속하는 그룹으로 살짝 더 높은 연봉과 타이틀을 약속받고 이직했고, 보장받은 2년을 채운 후 다시 한 단계 낮은그룹으로, 또 다른 그룹으로 옮기기를 거듭해서 지금은 '행복한 급여생활자'로 자리 잡았다. 그때 제안했던 Y회사는 지난 4년간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2.5배 정도 성장했다. 올해 말쯤 순조롭게 경영권이 매각된다면 그간 지방에서 고생한 핵심 경영진은 본인 연봉의 수십배의 보너스를 챙길 것이다. 물론 이 포트폴리오의 CFO는 다음 포트폴리오에서 더 높은 직급과 역할로 우리와 인연을 이어 나갈 것이고.

인생극장으로 돌아오자. 두 번째 유형의 CFO 후보도 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꽤 많다. 앞서 이야기 했던 Y사에서 당초 생각해 뒀던 A씨가 응하지 않자, 나는 좀 더 작은 컨설팅회사에서 경험을 쌓았지만 훨씬 돌쇠 분위기의 행동파 B씨에게 Y회사의 합류를 제안했다. 지방에 있어서 주말부부 생활을 감내해야 했지만, Y사를 글로벌 회사로 키우겠다는 우리의 전략에 B씨의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그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말을 나에게 던졌다. “이번 건 잘 만들어서 대표님 팀이랑 평생 함께 하고 싶습니다!”

물 론 B씨에게 꽃길만 있었던 건 아니다. 초기 조직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컨설팅 프로젝트도 동시에 하고, 지방에 내려가서 주말부부를 하면서 태어나서 처음 접해보는 산업을 동시에 배워나가는 게 힘에 부쳤을 것이다. 지금도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4개월간 극심한 스트레스로 구안와사까지 올 정도로 B씨는 스스로를 불 태웠다.

그럼 A씨와 B씨, 그들의 4년 전 선택 중 하나는 옳고 하나는 그르다는 얘기인가? 당연히 아니다.

PE에 조인하고 싶거나 PE가 투자한 포트폴리오에 이직을 고려 중인 분들은 내가 A씨형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B씨형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A씨 유형, 즉 이른바 고정급이 중요한 채권형 가치관은 대기업·외국계 기업·공기업이 적합하다.

PE가 투자하는 기업은 길어야 6년, 짧으면 3년 안에 승부가 나는 게임이다. 3~6년간 고정급을 10% 더 받아봐야 잘 된 투자에서 받을 수 있는 성과급의 1%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봉 2억원인 대기업 전직 임원이 10% 더 받고 와봐야 6년이면 1억2000만원, 거기에 세금을 제하고 나면 얼마일지 계산해 보라. 통상 PE투자 기업의 핵심인력 성과급은 스톡옵션 기준 4~10% 정도 된다.

예를 들어 1000원억짜리 회사가 2000억원이 되었다고 치자. 1000억원 가치 증가분의 4% 면 40억원이고, 이 반만 받아도 연봉의 10배는 거뜬하다. 물론 다니면서 받는 월급과 보너스는 귀찮으니 이야기 하지 말자. 이건 수학이 아니고 산수다. 물론 이렇게 반론하는 분도 있다. “PE들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데 성과가 안 나오면 바로 잘리지 않나요?” 나의 대답은 “그렇다.” 그런데 요즘은 국내 기업들 임원 수명은 더 긴가?

프레임을 좀 바꾸어 생각해 보면 '과거 연봉 대비 얼마 더'라는 계산법이 왜 맞지 않는지 더 또렷이 보인다. CFO 후보인 내가 이 기업의 오너라고 생각해보자. 매출 얼마 짜리 회사에 인건비 총액을 얼마 쓸 수 있고, 거기서 얼마짜리 임직원을 몇명 고용해서 얼마나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는가? 그러면 ‘오너’인 나는 ‘CFO’라는 자리에 어떤 일들을 기대하고, 그 대가로 얼마를 줄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이어 가다 보면, 사실 그 개개인이 과거에 얼마를 벌었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 ‘몇사람의 몫을 할 수 있는지’가 제일 중요한 이유다.

PE에서, 혹은 PE가 투자한 포트폴리오 회사에서 제2의 커리어를 고려하시는 분들이여, 월급은 마약이고, 투자업은 정글이다. 본인이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야수'를 가슴에 품고 있다면 도전하시라. 그렇지만 헤드헌터를 통해서든, 지인찬스를 통해서든 제발 "나 왕년에 베이스 얼마 받았는데 그 이상은 받아야 되겠다"는 말씀은 하지 마시라.

그 분들은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월급 많이 주는 기업으로 걸어들어 가시면 된다. 그래도 만의 하나 이 PE 정글에 들어오시겠다고 하면, 네고의 핵심은 월급이 아니라 엑싯(exit) 보너스, 그리고 그 다음 딜에서의 나의 위치다. 기본급 협상할 시간에, 열심히 만들 테니 돈 벌면 왕창 나눠달라고 하는 게 낫다. 성과 목표를 정하고, 거기서의 나의 기여도를 정하고, 그 초과분의 얼마를 달라고 협상하시라.

쓰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자꾸 글이 길어진다. 올 상반기에도 우리 회사에서 2명, 포트폴리오 회사에서 대표·임원급 6명, 본부장급 5명을 뽑아야 한다. 아, 내가 좋아하는 엑셀은 도대체 언제 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