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M&A(인수합병) 시장에서도 차트 ‘역주행’이 나타났다고 해야 할까요. 이전만해도 PEF(사모펀드) 사이에서 ‘2000년대 초반 아이콘’이라 평가절하됐던 이베이코리아가 갑작스럽게 M&A시장 중심에 섰습니다. 후보군으로 언급된 기업들 사이에선 “투자설명서 받은 곳이 수십~수백곳은 될텐데...”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하지만, 희망가격 ‘5조원’만 언급되면 웃음기부터 돌던 지난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뉴욕증시 상장에 성공한 쿠팡의 반사효과와 이로 인한 이커머스 시장 격변이 의외의 흥행 배경으로 꼽힙니다. 이베이코리아가 글로벌IB 중에서도 한국에서 '잘 팔기'로 소문난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를 둘 다 뽑아 자문업무를 맡았을 때부터 난이도가 있을 거래라 평가됐는데, 예기치 않았던 외부 변수가 초반엔 군불을 때 준 모양새입니다.

거론 중인 여러 후보 중 대형 PEF와 전통 유통기업들의 참전 의도는 사실 감이 잡히긴 합니다. 수십조원 규모의 아시아펀드를 기반으로 미소진 자금(드라이파우더)을 쏟아내야 할 PEF들은 일단 조단위 매물이 국내에서 나오면 대부분 무조건 봅니다(일부 글로벌PEF는 큰 딜의 경우 본사에 ‘우리는 이 딜을 왜 안볼 건지’ 사유서를 내야 하는 곳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제 정말 생존의 문제가 달린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들도 이베이코리아의 영업 비결이라도 이 기회에 캐려면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겠죠. 이러다보니 다른 굵직한 후보인 카카오의 참전 여부로 시장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커머스 육성’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가장 표면적인 카카오와의 시너지는 ‘커머스 강화’입니다. 카카오는 자회사 카카오커머스를 통해 ‘선물하기’와 ‘쇼핑하기’로 대표되는 커머스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거래액만 3조원으로 집계됐는데, 업계에선 이 중 선물하기가 약 70~80%가량을, 나머지 서비스들이 약 20% 안팎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순이익 약 1230억원을 벌어들일 정도로 ‘알짜 자회사’로 꼽힙니다.

‘카카오’라는 전국민 대다수가 활용하는 플랫폼을 보유한 데다 이를 활용한 '선물하기'가 안착한 점은 고무적이지만 고민은 확장성이었습니다. 특히 내부적으로는 상품 구색을 늘려야하는 문제가 가장 큰 숙제로 꼽혀왔습니다. 매년 입점 품목을 늘려가곤 있는데, 자체 MD 인력도 30여명에 그치다보니 한계가 분명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통적 홈쇼핑은 물론 다른 이커머스 공룡들과 비교할 때도 뚜렷한 강점이 없었죠.

당장 이베이코리아의 합산 거래액이 20조원에 육박하다보니 인수에 성공하면 외견상 거래액만 23조원에 달하는 커머스분야 2위 업체로 수직상승하게 됩니다. 단번에 상품구색을 늘릴 수 있는 효과는 분명할 것으로 보입니다. 별도 법인과 서비스로 운영하더라도 G마켓과 옥션에서 인기를 끄는 상품을 커머스 서비스에 접목한다든가, MD들의 역량을 서로 공유하는 방안의 협력도 이어질 수도 있겠죠. 반대로 PC 유입 비중이 대부분이었던 이베이코리아도 카카오톡이란 플랫폼을 통해 모바일 유입률이 크게 늘어나는 효과를 덩달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효과가 영 신통치 않을 것이란 우려도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카카오톡은 2019년 SK텔레콤과 지분교환을 단행하면서 11번가를 카카오톡 메뉴에 등록하는 등 협업을 진행했었는데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시너지를 보고 추후 11번가 인수 등에도 도전할 계획이었지만 백지화됐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타 경쟁사들 대비 커머스 사업의 핵심인 물류망이 갖춰지지 않다는 점도 숙제입니다. 당장 당일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는 쿠팡과 CJ·이마트와 협업으로 차근차근 점조직망을 구성해가는 네이버와 달리 사실 카카오톡은 특색있는 물류망을 갖추는 데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이 때문에 이베이코리아가 운영 중인 '스마일 배송'을 노리고 인수전에 뛰어들었단 평가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베이코리아는 현재 CJ대한통운과 협업해 스마일배송을 운영하고 있는데, 경쟁사인 네이버가 이미 CJ대한통운과 '혈맹'을 맺은 상황이죠. 카카오커머스는 본격적으로 출범했던 2018년에 미니스톱, 마켓컬리 인수도 내부적으로 검토하며 온·오프라인 유통망 확장을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시기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비싼 가격? 상장하면 되는데

오히려 PEF 업계와 M&A 시장에서 카카오의 사업적 시너지보다 더 주목하는 부분은 최근 카카오의 ‘파이낸싱’ 역량입니다. 즉 내년도 상장(IPO)이 거론되는 카카오커머스에 비상장사인 이베이코리아도 접목시켜 스토리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입니다. 카카오게임·카카오뱅크·카카오모빌리티에 이어 '라이언 전무'가 또 한 번 수십조원 기업가치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죠. 이 때문에 카카오가 정말 인수전을 완주한다면, 시너지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파트너로 참여하고 싶다는 재무적투자자(FI)들도 벌써부터 다수입니다.(다만 카카오는 콜옵션(매수청구권)+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등 FI에 어떠한 '위험방지조항(Drag-along)'을 허용 안하는 유명한 곳으로 꼽힙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M(과거 로엔엔터테인먼트) 합병입니다. 카카오는 어피너티로부터 2조원에 음원서비스 멜론으로 유명한 로엔을 인수하면서 M&A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워낙 인수가격이 높았던 탓에 우려한 시각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를 ‘잘 나가는’ 웹툰 서비스에 슬쩍 합병해 규모를 키우고, 기업가치만 10조원이 거론되는 '카카오엔터'로 스토리를 만들면서 단숨에 해결했다는 평가도 나오죠. 지난해 1조7000억원 기업가치로 카카오M에 투자했던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불과 몇개월만에 10조원 합병법인의 지분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기업가치 제고 고민은 커녕 상견례가 끝나기도 전에 '대박'을 거뒀다는 질투섞인 이야기들도 나옵니다.

한 글로벌PEF 업계 관계자는 "사실 여러 분야 업체를 인수해서 스토리를 입힌 후 상장하는 최근 카카오 움직임은 옐로모바일이 그렸던 큰 그림 자체와 다를 바가 없다"라며 "같은 비전도 성공하면 카카오, 실패하면 옐로모바일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카카오 내부적으로도 아직 교통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커머스 사업부 내에선 굳이 이 가격을 주고 진행할 메리트가 전혀 없다는 입장이지만 M&A를 이끄는 투자전략실은 적극적으로 검토에 나섰다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M&A 이끌 키맨은?

카카오공동체의 투자와 M&A를 이끄는 '키맨'은 배재현 최고투자전략책임자(CIO 수석부사장·41)입니다. 딜팀 ->빅딜팀 -> 투자전략팀 -> 투자전략실 등 여러차례 이름 변경을 거쳐 현재 9~10명이 소속된 조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배 부사장은 CJ그룹에서 과거 넷마블의 텐센트 투자유치 등을 담당하는 등 투자업무를 담당해온 인사입니다. 함께 CJ그룹에 있었던 박성훈 전 카카오 부사장이 카카오로 적을 옮기면서 함께 이동했습니다. 김범수 의장의 개인 '멘토'이자 카카오 초기창업자인 송지호 공동체성장센터장과도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카카오의 로엔 인수에 실무진으로 활약했고, TPG와 함께 카카오모빌리티를 사실상 새로 창업하는 수준의 작업을 진행한 인물입니다. 워낙 부지런한 데다 시장을 보는 시각도 선명해서 IB업계에선 카카오 외 국내 자본시장에 있었던 주요 M&A 스토리를 줄줄이 꿰고 있는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이외에도 실무를 총괄하는 인사는 강호중 실장(40)이 꼽힙니다. 최근 카카오뱅크·카카오모빌리티 투자유치 등 굵직한 투자유치건들을 이끌었습니다. 공인회계사(CPA) 출신으로 증권사에서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카카오 M&A 팀엔 IB출신과 PEF 등 이른바 ‘선수’ 출신을 찾아보긴 어려운 것입니다. 로엔 인수전부터 해당 팀원들이 인사 변동없이 호흡을 척척 맞춰왔습니다. 경험치를 쌓다보니 어느덧 조 단위 거래도 뚝딱 해내는 '원 팀'이 된 셈이죠. 또 카카오는 별도의 IB를 고용하지 않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선임이 없을 뿐이지, 다수의 IB에 비공식적으로 일을 준다는 평가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