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노위 불려나온 기업 CEO들 > 22일 열린 산업재해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기업 대표들이 선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최정우 포스코 회장,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 박찬복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 신영수 CJ대한통운 택배부문 대표,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 환노위 불려나온 기업 CEO들 > 22일 열린 산업재해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기업 대표들이 선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최정우 포스코 회장,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 박찬복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 신영수 CJ대한통운 택배부문 대표,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최정우 포스코 회장 등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9명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여야 의원들은 산업재해 원인을 해결하고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일부 의원이 호통과 면박 일색의 질의를 이어가면서 청문회 취지를 퇴색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짜뉴스’를 앞세워 증인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질의도 나왔다.

‘가짜뉴스’로 공격한 여당 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건설(GS건설·포스코건설·현대건설), 제조(포스코·LG디스플레이·현대중공업), 택배(CJ대한통운·쿠팡풀필먼트서비스·롯데글로벌로지스) 분야의 9개 기업 CEO를 증인으로 불렀다. 여야 의원들은 청문회가 증인들을 면박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질의가 시작되자 인격 모독성 발언을 이어갔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청문회 주제와 관계없이 최 회장을 겨냥해 일본 도쿄 신사참배와 채용 특혜, 자사주 매입 의혹을 일방적으로 제기했다. 노 의원은 일본의 한 종교시설에서 합장하고 서 있는 최 회장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면서 “신사참배 갔죠?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 몰아붙였다. 최 회장은 “2018년 세계철강협회 총회 중 쉬는 시간에 도쿄타워 인근에 한국 관광객이 많이 가는 절에 간 것”이라며 “신사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018년 일본의 고사찰을 방문한 사진. 왼쪽은 원본 사진이고, 오른쪽은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청문회에서 공개한 변형된 사진. 포스코는 최 회장이 신사를 참배한 것처럼 원본 사진이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포스코 제공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018년 일본의 고사찰을 방문한 사진. 왼쪽은 원본 사진이고, 오른쪽은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청문회에서 공개한 변형된 사진. 포스코는 최 회장이 신사를 참배한 것처럼 원본 사진이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포스코 제공
실제 노 의원이 공개한 사진 우측 상단에는 한자로 절을 뜻하는 ‘사(寺)’자가 보인다. 일본의 사당을 뜻하는 ‘신사’(神社)와는 다른 글자다. 포스코에 따르면 최 회장이 방문한 곳은 600년 이상의 역사를 보유한 도쿄 최대 관광명소인 조조지(上寺)다. 포스코가 공개한 원본 사진에도 사찰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글귀와 함께 정토종을 상징하는 연꽃 무늬 그림이 표시돼 있다. 하지만 노 의원이 공개한 사진엔 이 글귀와 그림이 지워져 있다.(사진 참조) 포스코 측은 가짜뉴스 차단을 위한 국회 ‘미디어언론 상생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고 있는 노 의원이 청문회에서 가짜 사진을 가져와 주제와 무관한 질의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포스코에 들어가려면 ‘아빠 찬스’가 최우선이라고 한다”며 “임원 자녀와 친척의 취업이 수도 없이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임원 자녀라고 특혜 채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노 의원은 “아들이 포스코인터내셔널에 입사해 같이 근무하지 않았냐”고 몰아세웠다. 최 회장은 “같이 근무한 적 없다”고 답했다. 포스코는 “2017년 8월 최 회장의 아들이 한 달간 체험형 인턴으로 일한 게 전부”라며 “현재 최 회장의 자녀들은 포스코그룹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재발 방지 약속한 CEO

노 의원뿐 아니라 일부 여야 의원도 면박성 발언을 이어갔다. 임종성 민주당 의원은 외국인인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표를 향해 “한국어가 가능한가. 한국 대표는 한국어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은 포스코를 ‘지옥’이라고 표현하며 최 회장에게 “노동자가 지옥으로 들어가는 저승사자의 역할이 아닐까”라고 주장했다.

CEO들은 재차 고개를 숙이며 산재사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최 회장은 “최근 연이은 산업재해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네이든 대표도 물류센터에서 근무 후 숨진 근로자에 대해 “깊은 사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중대재해법의 후속 조치로 “현행 산업안전보건 담당 조직을 확대해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우선 설치하고 기능 및 조직을 확충한 이후 외청으로 독립 출범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경제계에선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생산적 논의는 필요하지만 CEO들을 국회로 불러내 망신주기식의 청문회가 상시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