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사모펀드(PEF) 등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써 온 다양한 수단들이 재판에서 제동이 걸리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FI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후 약 10년 동안 기업의 파트너이자 M&A의 핵심 축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 방법도 다양하게 발전시켜 왔다. 자금력이 부족한 FI들은 돈을 빌려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차입매수(LBO) 기법을 쓰는 경우가 있다. 기업의 소수지분에 투자하는 FI들은 경영권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이익을 지키기 위해 동반매수청구권(tag-along), 동반매도청구권(drag-along), 매수청구권(call option) 및 매도청구권(put option) 등 여러 여러 안전장치를 넣곤 한다.

그러나 최근 M&A 관련 주요 판결에서 이런 투자방법이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PEF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라임과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로 '사모펀드(PEF)=사기성 투기세력' 인식이 법조계에 번지면서 정당한 투자수단도 제약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는 지난해 10월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의 배임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을 일종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PEF 운용사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너티)가 2005년 선 전 회장으로부터 LBO 방식으로 하이마트를 인수한 것에 대한 형사판단이었다.

그간 법원은 LBO방식 중 담보제공형은 배임죄 여부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으나, 합병형 방식에 대해서는 "피인수기업과 인수회사를 합병함으로써 결국 인수회사가 자신의 채무를 갚는 것과 동일하게 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용인해주는 흐름을 보여왔다. 그런데 지난해 판결에서는 다소 모호한 판시를 내놨다. 선 전 회장의 행위는 담보제공형 LBO에 해당하기 때문에 유죄라고 보면서도 "어피너티가 합병을 위해 설립한 하이마트홀딩스가 SPC에 불과해 합병으로 하이마트가 얻는 이익이 없다"고 판시했다. 합병형 LBO가 아니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합병 행위 자체의 의미를 크지 않게 본 셈이다. 당시 PEF 업계 관계자들은 "이제 합병 방식으로 차입 인수하는 것도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냐" "차라리 금융당국이 뚜렷한 기준을 마련해달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얼마 전 나온 두산인프라코어 중국법인(DICC)을 둘러싼 두산그룹과 FI들 간 소송 결과도 FI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2011년 투자 유치 당시 약속한 DICC의 기업공개(IPO)가 불발되면서 FI들이 드래그얼롱을 발동했지만, 매각은 결국 실패했다. 이에 FI들이 DICC 매매대금을 청구했다.

법원은 1심(2017년)에서는 두산을, 2심(2018년)에서는 FI들 손을 들어주더니 3심에서는 또 다시 두산 편을 들었다. 대법원은 매각 시도 과정에서 두산그룹이 자료제공 등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적극적 방해행위까지는 없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두산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FI가 기업에 소수지분을 투자할 때 활용해 온 드래그얼롱 조항에 관한 첫 판례였지기 때문에 투자업계 관심이 특히 집중됐다. 계약상대방에게 자신의 지분을 팔 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에 비해 확실성은 떨어지지만, 금융감독당국의 풋옵션 제재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대안으로 발전시킨 게 드래그얼롱+콜옵션 장치였기 때문이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FI로서는 일단 실사를 안했더라도 저렴하게 인수할 사람을 구해와서 먼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드래그얼롱 발동으로 가는 상황이라면 이미 회사 실적이 안좋은 상황이라는 건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인수자를 미리 구해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한 M&A 전문 변호사도 "기업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투자제안서를 작성해서 원매자를 확보하라는 건지, M&A 실무를 모르는 법리적 판단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FI들은 결국 또 다른 대안을 찾아나서거나 향후 협상 과정에서 계약서가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KCGI가 한진칼의 유상증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 결과 패소 결정을 받은 것까지도 '자조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주체는 대한항공인데 산업은행이 한진칼에 돈을 납입해준다는 게 기본적으로 말이 안되는데도, 법원이 용인해준 것은 한진칼에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KCGI의 적대적 M&A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라면서 "하이마트, 한진칼, DICC 사례들을 보면 FI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진 추세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자체가 자본시장 발전의 한 양상이라는 평가도 있다. 다른 PEF 대표는 "국내 자본시장이 발전하면서 계속 투자 사례가 늘자 분쟁도 늘어나는 것"이라며 "10년 전에는 해외 PEF와 딜을 할 때 국내서 제시한 계약서는 얇은 반면 해외서 제시하는 계약서는 책 한권 수준이었는데, 당시 해외 PEF 관계자가 '한국도 점점 계약서가 두꺼워질 것'이라며 웃은 기억이 난다"고 했다. "소송에서 질 위험을 방어하기 위해 점점 더 세밀한 조항까지 계약서에 넣게 되고 '중요한 변경', '중대한 위반' 등 애매한 문구를 사용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