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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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와 교역량을 고려한 원화 실질가치가 20개월래 최고치로 치솟았다. 지난해 원화 절상폭은 주요 60개국 가운데 22번째로 크고 수출 경쟁국인 일본 대만 홍콩 등을 웃돈다. 수출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나빠졌다는 뜻이다. 경기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수출에 복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질 원화가치 ‘고공행진’

23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REER)은 109.97로 전월(109.65)보다 0.29% 올랐다. 실질실효환율은 지난 2019년 4월(110.13) 후 가장 높은 것은 물론 2019년 평균(108.46) 수준도 웃돌았다. BIS 실질실효환율은 세계 60개국의 물가와 교역 비중을 고려해 계산한 통화의 실제 가치를 말한다.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그만큼 통화의 실질가치가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원화 실질가치는 지난해 1월 107.48에서 5월 104.8까지 떨어지며 유럽재정위기 후유증이 깊었던 2013년 8월(102.6) 후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달러 등 안전자산 가치가 두드러진 결과다.

하지만 한국 원화와 비슷하게 움직이는 중국 위안화 가치가 빠르게 치솟으면서 원화 실질 가치도 반등했다. 여기에 미국 중앙은행(Fed) 등 주요국이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시중에 돈을 풀면서 달러와 엔화 등의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미국 달러의 실질 실효환율은 지난 한 해 동안에만 3.13%나 하락했다.

경쟁국 대비 절상률 높아…중소기업 채산성 우려

지난해 12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2019년 12월 말보다 2.37% 올랐다. 지난해 원화 절상률은 스웨덴(6.53%), 호주(5.71%) 필리핀(4.21%) 등에 이어 60개국 가운데 22번째로 높았다. 수출 경쟁국인 일본(-0.89%) 대만(2.15%) 홍콩(-4.1%) 수준도 웃돌았다. 다른 수출 경쟁국인 중국(2.97%) 독일(2.74%)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원화 실질가치가 비교적 빠르게 올라가면서 개선되는 수출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12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보다 12.6% 증가한 514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월간 기준 수출액이 500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2018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이달 1∼20일 수출액(통관기준 잠정치)은 282억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10.6%(27억달러) 늘어나는 등 수출 전선에 ‘청신호’가 켜졌다.

과거처럼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수출 품질 경쟁력이 높아진 데다 해외 생산시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자동차·철강 대기업 일부는 원화 실질가치 상승에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많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올 상반기 달러가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1050~1060원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며 “달러 등 대비 원화가치가 올라가면서 환 헤지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여지가 높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같은 양을 수출해도 원화로 환산한 수익이 줄어들게 된다”며 “채산성이 나빠진 기업들이 이익을 높이기 위해 수출가격을 올리는 과정에서 실적이 타격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가격 결정권과 시장 주도권을 쥐지 않은 자동차·철강 대기업도 원화 강세로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