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 PEF 썰전-가치투자의 가치
국내 주식시장이 뜨겁습니다. 코스피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연일 갈아치우고 있고, 코스닥지수 역시 이전 최고치(2000년 3월 2925)를 갈아치울 기세입니다. 미국 역시 나스닥, 다우, S&P 모두 사상 최고 수준이고 심지어 중소형주를 대표하는 러셀2000 마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실물시장은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다며 아우성인데, 주식시장은 뜨겁기만 합니다. 바이오, 전기차, 2차전지, 클라우드, 플랫폼 등 대장주가 시장을 주도하고 저금리 유동성 장세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습니다만 여전히 이해에 한계가 많습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증시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애플, 알파벳,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기술 대장주들의 위세는 여전합니다만, 전통적인 가치주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등장에 대한 전망과 더불어 경제 회복 기대로 가치 평가가 수월한 전통 기업들이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한경 CFO Insight] PEF 썰전-가치투자의 가치
저는 이런 흐름을 볼 때마다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value investing)를 떠올립니다. 자본시장의 제우스쯤 될 버핏의 투자철학에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버핏의 가치투자는 무엇이길래 살아있는 전설로 남아있는가?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그의 투자 방식은 어떨까?

가치투자는 시가와 장부가치의 차이라는 기회를 기본으로 합니다. 여기서 시가는 주식시장에 형성된 주가를 말하고, 장부가치는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가치를 말합니다. 가치투자의 시조이자 버핏의 스승인 벤자민 그레이엄은 시장가격은 장부가치로 표시되는 내재가치(intrinsic value) 이하로 떨어질 때도 있고 (매수 시점), 내재가치를 상회할 수도 있다고 (매도 시점)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첫째, 주식가격(시가)은 변덕스러운 감정과 탐욕과 두려움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둘째, 내재가치는 공장, 기계, 사무 빌딩 등 같은 실물자산에서 생겨나는 수익에 의해 결정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늘 시가와 장부가치의 차이라는 기회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서 버핏의 투자방식은 어떨까요? 버핏은 전광석화 같은 의사결정을 하기로 유명합니다. 이스라엘 기업이 매각을 제안했을 때 버핏은 이스라엘에 가보지도 않고 50억 달러가 넘는 기업을 인수해버립니다. 그러면서 회사 인수를 마친 다음에 이스라엘로 날아가 회사를 보겠다고 말합니다. 미국 철도회사 BNSF를 인수할 때에는 목요일에 판단하고 금요일에 제안하고 일요일에 딜을 종료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경쟁입찰이나 협상이라는 전형적인 M&A 절차가 생략됩니다. 물론 그 흔한 전략, 재무 및 법률실사나 투자은행(IB) 자문은 없습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도 이런 식으로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였습니다.)

버핏에게 이런 투자 실행이 가능한 것은 뛰어난 혜안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합니다만, 사실 그는 상장기업 연차보고서를 지독하게 파는 사람입니다. (취미라고는 체스와 탭 댄스 정도입니다.) 그로선 늘 시가와 장부가치의 차이라는 기회가 눈에 보이는 셈입니다. 그는 기업 인수에 성공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은 비즈니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인수하고 훌륭한 인력을 투입해 운영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참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실물자산이 아닌 무형자산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버핏의 가치투자가 기업가치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치투자에서 기회의 잣대로 보는 내재가치는 유형자본의 시대에는 비교적 측정이 수월하지만 무형자본이 대세인 요즈음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디지털 중심으로 변하는 경제에서 기업의 내재가치는 촉각이나 시각, 계산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무형자산에서 창출된다는 겁니다.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애플의 아이폰 디자인과 브랜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시스템, 아마존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전형적인 무형자산입니다. (버핏은 뒤늦게 애플에 투자했지만 아마존은 투자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최고경영자, CFO,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이런 거대담론에 대한 고민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게 현실입니다. 특히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고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수많은 대형 딜을 보면 인수대상 기업의 가치에 대한 접근 방법은 거의 천편일률적입니다. 에비타(EBITDA) 배수는 기본적이고 PER, PBR, PSR까지 보충적 수단으로 동원됩니다. 모두 주가라는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합니다. 매도자 측의 제시 가격은 거의 불변인데 매수자의 자금능력과 성장전략에 따라 인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납니다. 즉 가치는 사라지고 경쟁만 남습니다.

기업은 법적인 자연인입니다. 육성하기가 가장 까다로운 생물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법인에 대한 가치를 과연 숫자로만 표현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기업의 가치 창출에는 많은 요소가 개입됩니다. 주식이 상장되어 있는 경우라면 흔히들 시가 총액을 기업가치와 거의 동일시합니다만 이는 기업을 다양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가 아닌 주식소유자(stockholder)의 통제 아래에 둔 개념에서 비롯됩니다. 사실 기업은 주주 외에도 채권자, 소비자, 종업원, 심지어 지역사회와 환경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어우러진 결과로서 가치를 창출합니다. 기업 문화도 핵심적인 가치 요인입니다. 기업 문화는 조직 인력에 의해 내재화된 습관(routine), 우선순위(priority), 헌신(commitment) 등이 결합되어 형성됩니다. 결코 기업회계를 통하여 장부가치로 반영되거나 계량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엄청납니다.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가치 평가는 늘 한계가 따르고 함정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기업가치는 명확한 비전과 전략, 청사진, 단호한 실행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창출해나가는 대상이지 어느 한 시점에서 혹은 단기간 내에 생겨나거나 소멸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냉정해질 때입니다.

※정삼기 서앤컴퍼니 공동대표는 삼일회계법인을 거쳐 산업은행에서 재무기획부장과 컨설팅실장 등을 지냈습니다. 작년 5월부터 국내 중견 PEF 서앤컴퍼니에 합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