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남부지방검찰청 앞에 설치된 정인이 사진에 시민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1일 서울 남부지방검찰청 앞에 설치된 정인이 사진에 시민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동학대 예산 70%가량이 벌금·복권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벌금·복권 수익이 줄면 관련 예산도 확 쪼그라드는 구조다. 매해 규모가 바뀌는 '천수답'식 예산이다보니 아동학대를 막을 만한 중장기적인 정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예산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아동학대 예산 절반이 벌금 수입
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총 546억2300만원 규모다. 보건복지부 법무부 기획재정부 경찰청 여성가족부 등 5개 부처 12개 예산 사업으로 구성돼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예산이 아니다. 법무부의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끌어오는 예산이 287억3600만원으로 아동학대 관련 예산의 52%를 차지한다. 이 기금은 범죄자들이 벌금으로 낸 돈에서 8%씩 떼서 적립한다.

문제는 벌금 수납액이 해마다 들쭉날쭉한 데다가 줄어드는 추세라는 점이다. 2015년 1조3490억원이었던 벌금수납액은 2019년 1조835억원으로 줄었다. 정부도 재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감안해 올해 벌금수납액에서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 적립하는 비율을 6%에서 8%로 높였다. 하지만 벌금을 사회봉사명령으로 대신할 수 있는 제도 등으로 인해 벌금수납액 자체가 앞으로 크게 늘어나리라고 기대하긴 쉽지 않다.

복권기금도 사정은 비슷하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나 복권기금의 몇 퍼센트를 아동학대 예산에 쓴다'고 비율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매년 위원회가 학대피해아동 보호 등에 쓸 예산을 책정한다. 복권기금의 경우 복권 및 복권기금법 제23조 제3항 제3호에 따라 저소득층, 장애인,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피해여성, 불우청소년 등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사업과 다문화가족 지원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 타 소외계층 사업에 복권기금이 많이 배분되면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올해 아동학대 예산의 68.5%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에서 온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벌금·복권기금 수입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아동학대 관련 예산이 크게 늘기 어려운 구조인 게 사실"이라고 했다.
쉼터 찾는 아이 늘어날 텐데...
앞으로 쉼터가 필요한 학대피해아동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올해 3월부터 학대 신고가 1년 이내에 두 번 접수되면 부모와 아동을 긴급 분리하기로 했다. 현재도 쉼터는 포화상태다. 학대피해아동 쉼터 76개소의 정원은 600여명 남짓이다. 2019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3만 건이 넘는다.

물론 현재 구조에서도 아동학대 관련 예산을 증액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실제로 올해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전년보다 57% 늘었다. 복권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학대피해아동 쉼터 예산도 46% 증가했다. 학대피해아동 쉼터를 76개소에서 91개소로 늘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작년 복권 판매수익이 '역대급'으로 많이 팔렸기에 가능했다. 작년 상반기 복권 판매액은 2조6208억원으로 2005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행정 효율성도 문제다. 기금을 담당하는 부처가 다르다는 건 예산의 '면접관'도 여러 분야에 흩어져있다는 의미다. 두 기금은 보건복지부 소관이 아니다 보니 예산 심의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받지 않는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법제사법위원회, 복권기금은 기획재정위원회가 소관위원회다.

아동학대 예산이 다른 부처의 기금에 의존하고 있어 정책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은 한두 번 나온 게 아니다. 작년 말 ‘2021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국회 예비심사검토보고서는 “아동학대 예방사업의 예산을 타 부처 소관 기금이 아닌 보건복지부 일반회계로 변경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을 실시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은 "아동학대 예방·대응 예산의 담당 부처 일원화에 대해 당이 주도적으로 공론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국가 재정의 형편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이다. 세수 여건도 팍팍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작년 1~11월 국세 수입은 267억8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실적보다 8조8000억억원 감소했다. 기금이 일반회계보다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도 예산 구조를 섣불리 바꿀 수 없는 이유다. 기금은 지출 금액의 20% 이하 범위에서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지출 계획을 변경할 수 있다.
"제도적 허점부터 파악해야"
무엇보다 이미 확보한 예산의 집행력을 높이는 게 정부가 당면한 과제다. 예산 규모나 구조만 바꾼다고 아동학대 방지·대응 대책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으로 책임이 분산되고 전문 인력이 부족한 현재 상황을 바꾸지 않고 예산만 늘려봤자 '충격적 아동학대 사건→대책 발표'가 반복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체벌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탁틴내일·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 52개 단체는 지난 11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복지부 장관과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질의서를 통해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가 양천사건(정인이 사건) 피해아동을 보호하지 못한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과 입양 시스템에 대해 즉각 철저한 진상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며 "실책이 있다면 관련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제도적 허점이 있다면 낱낱이 파악해 근본적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