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년 동안 세계 경제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 증가라는 혜택을 누렸다. 선진국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활발히 일하는 가운데 중국의 개방화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동유럽의 자유화 등으로 수억명의 생산가능인구가 새로 세계 노동 시장에 유입된 덕분이다.

다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앞으로 30여년간은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세계 경제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당장 충격을 줄 요인은 아니지만 서서히 경제 구조를 바꿔나갈 강력한 힘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기업들도 중장기적 시각에서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산성을 높이고 부채를 낮추는 등의 방법이 거론된다.

◆중국, 세계에 노동 인구 10억명 공급

국제연합(UN)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생산가능인구는 약 51억명에 달한다. 가장 가파르게 늘었던 시기는 1980~2010년으로, 26억명에서 46억명으로 약 20억명 늘었다. 중국이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이 기간(1980~2010년) 중국의 생산가능인구는 6억명에서 10억명으로 4억명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약 5500만명)과 유럽(약 4800만명)을 합한 것보다 4배 많았다.

중국은 인구도 인구지만 강력한 공업화로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서면서 세계 노동 시장에 어떤 나라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다. 같은 기간 인도(약 3억9000만명), 아프리카(약 3억3000만명), 동남아(약 2억명)에서도 생산가능인구가 급증했지만, 제조업 기반이 약한 탓에 중국만큼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한경 CFO Insight] 인구 감소, 기업에도 '발등의 불'
선진국과 중국 등에서의 노동력 증가는 몇 가지 현상을 가져왔다. 우선 기업 이익의 증가다. 풍부한 노동력 덕분에 임금 상승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많은 기업들이 중국과 동유럽 등으로 공장을 이전했고, 자국에서도 약해진 노조의 지위를 활용해 노동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이는 전반적인 기업 이익 상승으로 이어졌다.

또 하나의 현상은 낮은 인플레이션율과 저금리다. 풍부한 노동력과 세계화 덕분에 임금과 제품 가격 상승이 모두 정체되었던 만큼 낮은 인플레이션율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저금리는 낮은 물가 상승률과 더불어 높은 저축율의 영향을 받았다. 한창 일을 하는 시기에 있는 사람은 소비보다 저축을 더 많이 하는데, 이는 세계 금융 시장의 자금 공급 증가로 이어졌다.

◆주요국 생산가능인구 정점 찍어

출산율 저하와 은퇴 인구 증가로 노동력이 감소할 것이란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며 오히려 실업률 걱정이 더 커졌다. 하지만 앞으로 30여 년에 걸쳐 인구 구조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젓듯 사람들의 삶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중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5년 10억2157만명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섰다. 서유럽은 2019년(1억2478명), 동유럽은 2009년(2억9979만명) 정점을 찍었다. 한국은 2016년(3730만명), 일본은 1995년(8777만명)이 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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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생산가능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곳도 있다. 미국은 이민 유입 덕분에 2020년 2억1514명인 생산가능인구가 2050년엔 2억3180만명으로 1666만명 늘어날 전망이다. 이 기간 동남아가 약 6000만명 늘어나고, 인도는 약 1억8000만명 증가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아프리카의 생산가능인구가 2020년 7억5000만명에서 2050년 15억5000만명으로 약 8억명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런 인구 증가는 아프리카가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이유다. 다만 미비한 인프라와 정치 불안으로 아프리카가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낮게 평가된다. 인도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아프리카를 포함하면 세계 생산가능인구는 느리지만 그래도 계속 증가하겠지만,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2044년 약 46억명으로 정점을 찍을 것으로 현재 예상된다. 특히 생산가능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아프리카 제외)은 이미 2017년 68%로 정점을 찍은 상태다.

◆기업들, 생산성 높이는 투자 필요

주요 국가에서의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기업 입장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테마다. 가장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점은 기업 이익 하락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임금 인상과 노동자들이 협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일본, 한국 등 주요 제조 강국이 했던 것처럼 중국, 동남아, 동유럽 등으로 공장을 이전해서 얻는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은 중장기적으로 자동화 수준을 높이거나,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부채를 줄여 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노동 인구 감소가 물가와 금리 상승을 불러올 것이란 이유에서다. 저금리에 익숙해진 기업들이 마음껏 채권을 발행하면서 세계적으로 기업 부채가 급격히 늘어난 만큼 금리 상승에 따른 충격이 클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인플레이션과 금리에 있어서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저금리가 쉽게 완화되지 않을 거란 시각도 만만치 않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그 자체로 성장률 하락 요인이기 때문이다. 은퇴 인구가 늘면서 저축이 줄겠지만, 기업도 투자를 줄이면서 자금 시장에서의 수급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