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세 남녀 1만명 조사
작년에는 부패없고 도덕성에 높은 점수
올해는 고용 늘린 기업들 평판 좋아져
"사회적 신뢰도 높으면 비싸도 산다" 66%
부정적 뉴스 나오면 제품 구매 꺼려
1950년대 미국 경제학자 하워드 보언은 현대적 의미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처음 제시했다. 그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 외에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0여 년이 지난 현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될 만큼 더욱 중요해졌다.
소비자는 사회적 신뢰가 있는 상품엔 기꺼이 지갑을 열고 주변에도 추천한다. 반대로 기업에 관한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면 곧바로 지지를 철회한다.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평판이 소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한국경제신문이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입소스, 국내 최대 온라인 패널조사기관 피앰아이와 함께 시행한 ‘2020 한경-입소스-피앰아이 기업 소셜임팩트 조사’에서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기업에 높은 점수를 주고, 그런 기업 제품은 비싸더라도 기꺼이 사겠다는 소비자 의식이 확인됐다.
노동에 대한 관심 높아져
지난해에 이어 2년차로 접어든 이번 조사 결과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소비자들의 소셜임팩트에 대한 인식 변화다. 소비자들은 지난해엔 부패 및 비리 척결에 대한 의지와 사회윤리성에 점수를 줬다면 올해는 브랜드들이 고용 성과와 노동 안정성에 얼마나 신경쓰는지를 주목했다. 정원 입소스코리아 비즈니스컨설팅 그룹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가 불안해진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다.
15~64세 남녀 1만 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에서 패널들은 브랜드 평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뽑아달라는 질문에 ‘일자리 창출 및 고용 안정’ ‘임직원 근로환경 개선’을 꼽았다. 여러 항목 중 중복 선택이 가능한 상황에서 두 항목을 선택한 비율이 각각 전체의 86%에 달했다. ‘친환경 공정 및 제품 생산’(82%) ‘환경 문제 해결’(79%) 등은 뒤로 밀렸다. 환경보다는 노동 문제가 더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상품 구매 시 기업의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성별과 연령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여성은 20~50대, 남성은 40~60대가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 남성은 88%로 가장 높게 나온 반면 10대 남성은 71%로 가장 낮았다. 여성은 40대가 87%로 가장 높았고, 30대와 50대도 각각 86%로 비슷했다.
코로나 위기에서 돋보인 쿠팡
전체 응답자의 32%는 코로나19로 인해 신뢰하는 브랜드에 변화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하거나(33%) △코로나 위기를 돈벌이 기회로 활용하지 않거나(25%) △고객 위생·건강 보호를 위해 노력(23%)한 브랜드를 더욱 신뢰하게 됐다고 답했다.
전자상거래(e커머스)업체 쿠팡이 코로나19로 인한 혼란 속에서 사회적 신뢰도를 쌓아올린 대표적 기업으로 꼽혔다. 쿠팡은 전자상거래 사회적 신뢰도 조사에서 11번가와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쿠팡은 외출 자제에 따른 비대면 거래 확산 국면에서 경쟁 업체보다 한 박자 빠른 배송(로켓배송)으로 소비자의 지지를 받았다. 또 올해 상반기에만 쿠팡과 쿠팡 풀필먼트(물류센터 운영)를 통해 총 3만7000여 명을 고용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도 앞장선 점이 크게 부각됐다. 특히 배송 직원을 모두 직고용하면서 다른 택배업체와 비교되고 있다. 이마트가 대형 유통업체 중에서 압도적인 1위(41%)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경쟁사들이 점포를 매각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마트는 구조조정 없이 트레이더스 매장을 포함해 전국에 16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믿는 브랜드는 비싸도 산다”
사회적 신뢰도가 높은 기업 제품은 조금 더 비싸도 구매하겠다는 소비자 의식도 확인됐다. ‘신뢰하는 브랜드는 비싸더라도 구매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66%로 나타났다. ‘신뢰하는 브랜드는 매번 다시 구매한다’(65%) ‘자신이 평소 신뢰하는 브랜드 제품을 주변에 추천하겠다’(62%) 등의 항목도 높은 점수가 나왔다.
반면 ‘부정적인 뉴스’는 소비자의 지지 철회로 이어져 기업에서 장기적인 소셜임팩트 관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도 나왔다. ‘평소 신뢰하는 기업의 부정적인 기사를 접해도 일단 믿는다’는 응답은 38%에 불과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상위 30% 그룹인 ‘소셜임팩트 주도층’에서 브랜드 충성도는 더욱 부각됐다. 이들 사이에서는 ‘조금 더 비싸더라도 신뢰하는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응답이 94.6%에 달했다.
“TV, 냉장고 어떤 브랜드 좋아하세요?”한국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략 정해져 있다. 10명 중 9명은 ‘삼성’ 혹은 ‘LG’라고 답한다. 그만큼 두 브랜드가 국내 가전시장을 꽉 잡고 있다. 1위 바뀜도 치열하다. 누가 올해 신제품을 내놓았느냐에 따라, 누가 마케팅 비용을 더 많이 썼느냐에 따라 순위가 바뀐다.‘사회적 평판’을 묻는 소셜임팩트 조사 결과는 이런 삼성과 LG 간 박빙의 경쟁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를 가늠할 단초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LG전자는 작년 첫 조사에 이어 올해도 삼성전자를 제치고 대형가전과 환경가전, TV분야 소셜임팩트 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소셜임팩트는 미래 시장 점유율의 가늠자‘2020 한경-입소스-피앰아이 기업 소셜임팩트 조사(CSIS)’는 50개 브랜드의 사회적 평판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냉장고와 세탁기 등 대형가전 분야에서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9.2%가 LG전자를 선택했다. 삼성전자는 33.9%로 2위였다. 에어컨, 공기청정기 등이 포함된 환경가전 분야에서도 LG전자는 48.8%로 삼성전자(33.1%)를 꺾었고, TV 분야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조사를 총괄한 입소스코리아의 정원 비즈니스컨설팅 그룹장은 “LG는 의인상을 수여하는 등 사회적으로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흥미로운 점은 LG를 선택한 응답자 대부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진보라고 답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정 그룹장은 “삼성을 선호하는 소비자는 막연한 충성심을 갖고 있는 이들로 과거 전통적인 마케팅의 결과물”이라며 “이에 비해 LG는 이것저것 써보면서 실험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품질 차이 적을수록 평판이 중요식품, 패션, 주류 등 소비재시장도 브랜드 평판이 매출과 직결되는 대표적인 분야다. 제품별로 가격과 품질 편차가 압도적으로 나지 않는 만큼 시장 점유율도 엎치락뒤치락 빠르게 변한다.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얘기다.하지만 소셜임팩트를 기준으로 한 브랜드 순위에선 의미 있는 격차가 벌어졌다. 라면시장에선 오뚜기가 농심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격차가 13%포인트에 달했다. SNS에서 ‘갓뚜기’로 불리는 등 착한 기업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오뚜기는 1992년부터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소비자들과의 ‘세심한 소통’에서도 오뚜기가 농심을 압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입소스 관계자는 “오뚜기는 함영준 회장이 2016년 상속세 1500억원을 전액 납부한 사실이 알려지고 직원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하면서 착한 기업이라는 입소문이 퍼졌다”며 “3세인 함연지 씨도 유튜브를 통해 소비자들과 적극 소통하고 있는 것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심은 생수 부문에서도 열세품질 차이를 내기 어려운 생수 부문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롯데칠성의 생수 브랜드인 아이시스가 지난해 3위(8.5%)에서 올해 2위(10.7%)로 상승했다. 환경을 생각해 업계 최초로 포장을 없앤 ‘무라벨 생수’를 내놓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한 것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위였던 농심 백산수는 4위(5.8%)로 밀려났다. 시장 점유율과 소셜임팩트 1위는 제주삼다수가 놓치지 않고 있다.치킨 프랜차이즈 부문에선 가맹점 이익을 중시해 매장 수를 무리하게 늘리지 않은 교촌치킨이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BBQ는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청년 창업 지원에 나서고, 가맹점 상생에 앞장서면서 지난해 3위에서 올해 2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5위였던 60계치킨은 ‘깨끗한 기름을 쓴다’는 브랜드 정체성 등을 앞세워 지난해 5위에서 올해 3위에 올랐다.화장품 부문에선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와 헤라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브랜드는 3위 안에 들지 못했다. 두 회사는 뷰티업계의 맞수다. 실적에선 LG생활건강이 앞서고 있다. 올 3분기까지 영업이익 9646억원을 기록했다. 62분기 연속 성장세(영업익 기준)를 달성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같은 기간 152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여전히 사회적 평판 측면에서 앞서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이 실적에서도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김보라/송형석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지난 1월 30일의 일이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전세기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진원지인 우한시에 고립된 우리 국민 700여 명을 무사히 데려오기 위한 비행기였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일파만파로 번지던 때였다. 대한항공은 회장이 가장 먼저 자원했고, 대한항공 노조 간부들은 승무원을 자청했다.소비자들은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나선 대한항공을 잊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올해 소셜임팩트 조사에서 항공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전체 응답자 중 46.9%의 선택을 받았다. 2위인 아시아나항공(31.6%)과의 격차는 15.3%포인트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아시아나항공이 34.6%, 대한항공이 33.6%로 오차범위 내 공동 1위였다.소셜미디어 부문에서는 인스타그램이 단독 1위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인스타그램(28.7%)과 카카오스토리(28.5%)는 오차범위 내 공동 1위였다. 올해는 인스타그램을 가장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32.0%로 가장 많았다. 26.5%를 기록한 카카오스토리와 격차를 벌렸다.홈쇼핑에서는 2위와 3위가 바뀌었다. GS홈쇼핑이 24.9%로 지난해에 이어 1위를 공고히 한 가운데 지난해 17.6%로 3위였던 롯데홈쇼핑이 올해 2위(18.1%)로 올라섰다. 롯데홈쇼핑은 골프선수 박세리, 가수 양준일 등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인물을 빠르게 광고모델로 섭외하는 마케팅으로 젊은 층에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모바일결제 부문에서는 강자인 삼성페이의 뒤를 잇는 2위 자리를 놓고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의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카카오페이(17.2%)가 네이버페이(16.3%)를 0.9%포인트 차로 제쳤다. 오차범위 내 공동 2등이었다. 올해는 단 0.1%포인트 차이가 났다. 네이버쇼핑과 함께 가파르게 성장하는 네이버페이를 선택한 응답자는 전체의 19.4%였다. 카카오페이는 19.3%였다.아웃도어 브랜드에서는 코오롱스포츠(20.3%)가 K2(17.0%)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코오롱스포츠는 콘셉트 스토어 ‘솟솟상회’ 등 체험형 오프라인 매장을 최근 잇따라 열며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친환경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코오롱스포츠는 론칭 50주년인 2023년까지 전체 상품의 50%에 친환경 소재나 공법을 사용할 계획이다.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오뚜기 진라면은 라면 시장 2위 브랜드다. 지난해 말 기준 시장 점유율(판매량 기준) 14.6%로 농심 신라면(15.5%)을 턱밑까지 추격 중이다. 농심의 ‘30년 아성’을 위협하는 오뚜기의 비밀 병기는 ‘소셜임팩트’. 오뚜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라면 부문에서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 1위에 올랐다.한국경제신문은 지난 7월, 10월 두 차례에 걸쳐 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 형태로 ‘2020 한경-입소스-피앰아이 기업 소셜임팩트 조사(CSIS)’를 시행했다. 그 결과 50개 업종에서 브랜드별 사회적 평판의 명암이 여실히 드러났다. 소셜임팩트는 소비자가 기업의 사회적 평판을 가늠하는 지표로, 투자자 입장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지수와 함께 가장 중요한 기업 평가 잣대로 꼽힌다.현대자동차(내연·친환경 자동차 부문)와 SK텔레콤(5세대 이동통신) 삼성페이(모바일 결제) 삼성생명(생명보험) 호텔신라(럭셔리 호텔) 신세계(백화점) 배달의민족(배달앱) 스타벅스(커피 전문점) 참이슬(소주) 제주 삼다수(생수) 하나투어(여행) 유한양행(제약) 등이 시장을 리드하며 좋은 평판(소셜임팩트)을 유지하는 기업군으로 분류됐다.농심과 오뚜기처럼 시장 1위(농심)와 소셜임팩트 1위(오뚜기)가 갈린 업종도 있다. 어느 기업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절반(46.7%)이 오뚜기를 선택했다. ‘갓뚜기’가 신라면을 역전할 시점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근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올해 3000억원을 투자하고, 1만5000여 명을 신규 채용한 쿠팡이 거래액 기준으로 시장 1위인 네이버를 소셜임팩트 조사에서 제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