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을 위한 자동차 시대
인간이 개를 길렀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9500년 페르시아 베르트 동굴의 것이다. 물론 그 이전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지만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개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민속, 종교, 전쟁, 스포츠, 장애 극복 도우미 등에 활용되면서 인간 삶의 동반자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어디든 반려견과 함께 다니는 사람이 늘어나자 자동차 회사의 생각도 점차 바뀌고 있다. 반려견을 ‘가족’으로 인식하며 차 안에 전용 시트를 만들고 안전띠도 마련했다. 심지어 전용 차종을 별도로 개발하기도 한다. 롤스로이스는 2015년 슈팅 브레이크(왜건) 콘셉트에 반려견을 위한 공간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뒷좌석 전체를 반려견 공간으로 꾸며 ‘롤스로이스 도그(Rolls-Royce Dog)’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닛산은 아예 차 이름에 ‘도그’를 사용한 전용 차종을 2017년 선보였다. 이른바 ‘로그 도그(Rogue Dog)’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로그에 고급 가죽과 방수 소재를 적용했다. 탈부착이 가능한 반려견용 침대는 물론 테일게이트(트렁크)를 열면 반려견이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접이식 경사로도 넣었다. 또 주행 중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특수 제작된 먹이통과 물통을 달고, 야외 활동 후 사용할 수 있는 이동식 샤워장도 설치했다. 360도로 돌아가는 샤워기와 약 40L 용량의 물탱크, 털을 말려줄 건조기는 기본이고 쾌적한 온도 조절을 위해 뒷좌석 에어벤트(환풍기)도 넣었다. 심지어 인포테인먼트(차량 내 오락·정보를 제공하는 장치) 시스템의 멀티미디어 화면을 통해 반려동물 상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며 뒷좌석에 10인치 LCD(액정표시장치) 화면을 설치해 반려동물이 주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반려견 전용 차종의 등장에는 당시 영국에서 진행된 설문조사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영국 애견협회가 1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99.9%가 반려견을 가족 구성원으로 생각했다. 88.9%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 반려견의 편의성을 고려한다고 응답했다. 54.7%는 반려견의 승하차를 돕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으며 50.9%는 넓은 공간을 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고 여겼던 제조사들이 점차 반려견 전용 기능에 주목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우리나라도 반려견에 대한 생각이 유럽과 다르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9년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가구는 591만 가구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495만 가구가 598만 마리의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가구당 평균 2.4명이 거주하는 점을 고려하면 무려 1188만 명이 반려견과 같은 공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반려견 패키지도 등장했다. 현대자동차가 소형 SUV ‘베뉴’와 함께 선보인 반려동물 패키지는 아이소픽스(유아용 시트 고정장치)에 연결 가능한 반려동물 전용 카시트, 안전띠에 연결하는 반려동물 하네스(가슴줄), 안전띠 또는 하네스를 연결해주는 테더, 반려동물 승하차 시 오염을 막는 동승석 2열 시트와 트렁크 커버 등으로 구성됐다. 출시 전부터 반려동물의 동승을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 국내에서도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반려견을 위한 자동차 시대
이미 반려동물과 함께 타는 택시까지 등장했으니 이제 반려동물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시대다.

권용주 <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