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1942~2020)

그가 젊은이들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자긍심과 자신감이다. 열정과 도전정신만 있으면
아무리 작고 초라한 곳에서라도
세계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건희 '세계 1등' 자신감 남겨주고 떠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불의의 급성 심장질환으로 쓰러진 이후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 6년5개월의 공백은 의외로 크고 깊었다. 사람들은 이건희라는 이름을 점차 잊어가고 있던 중이다.

그럼에도 이건희 회장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결코 목표를 수치로 제시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벌거나 자산을 늘리는 일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세계 일류를 지향했다. 집에서 삼성 TV를 본다는 이유로 삼성전자 임원들을 나무라기도 했다. “우리 것만 보고 있으면 해외 경쟁사들 제품은 언제 분석하느냐”는 질책이었다.

그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1987년 삼성 회장직에 올랐다.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400달러 선이었다. 아무리 삼성이라도 가난한 나라의 내수 기업에 불과했다. 이건희 회장은 많은 것이 성에 차지 않았지만 당장 변화를 모색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오랜 세월 구축한 경영시스템을 차마 허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5년을 기다린 끝에 1993년 ‘신경영’이라는 이름으로 거대조직 삼성에 일대 수술을 가했다.

그해 6월부터 8월까지 임직원을 대상으로 무려 350시간에 달하는 강연을 했다. 지금 들어봐도 무릎을 칠 정도로 입체적이고 선견적인 내용이 많다. 삼성을 바꾸기 위해 사전에 얼마나 많은 공부와 준비를 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그는 참모들을 앞세우거나 외부에서 누군가를 불러들여 삼성을 혁신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목소리로 변화의 방향성과 절박함을 전달하고 설득했다.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사장단이 반대하는 혁신적 조치들도 서슴없이 단행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렇게 축적한 혁신 에너지를 21세기 초 디지털 전환에 모두 쏟아부었다. 2000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5000달러 정도였다. 삼성이나 한국 경제나 또 한 차례의 도약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시대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던 인텔 소니 파나소닉 노키아 에릭슨 모토로라 등을 줄줄이 따라잡았다. 애플도 미국 기업이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항서(降書)를 썼을 것이다. 그래도 이 회장은 만족하는 기색이 없었다. 어떤 순간에 질문해도 위기라고, 언제 망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우리 경제와 국민에게 큰 선물을 주고 떠났다. 중동 국가의 석유에 비견할 수 있는 반도체를 대한민국의 강력한 ‘부존자원’으로 물려줬다. 유사 이래 대한민국이 이렇게 편하게 돈을 번 적이 없었다. 또 거의 모든 국가를 아우르는 거대한 사업 네트워크를 구축해 대한민국의 경제영토를 지구촌 전체로 넓혀놨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삼성물산이 해외에서 마스크를 긴급 조달할 수 있었던 이유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선물은 자긍심과 자신감이다. 초일류기업 삼성의 이미지와 브랜드파워는 우리 모두의 큰 자산이다. 젊은이들은 해외 시장을 누비는 한국 제품에 자신의 꿈과 미래를 투영하고 있다. 열정과 도전정신만 있으면 아무리 작고 초라한 곳에서라도 세계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성취와 보람은 별개로, 이건희 회장의 개인적 삶은 행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업 총수라고, 큰 부자라고 항상 즐거울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삼성이라는 큰 짐을 숙명처럼 짊어진 채, 한시도 마음 편할 날 없는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지금 남은 가족도 비슷한 사정이다. 세계 일류기업이라는 필생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사회적 질시와 비판도 적지 않게 받았다. 그래서 그의 영면을 더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이 회장이 일구고 남긴 업적과 유산들을 미래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것은 후대의 몫이다.
이건희 '세계 1등' 자신감 남겨주고 떠나다

이심기 산업부장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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