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치 파운드리(지름 8인치 웨이퍼로 반도체를 수탁생산하는 사업), TV용 LCD(액정표시장치), 노트북.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세 사업엔 공통점이 있다. ‘구식’ ‘애물단지’ 취급을 받다가 최근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경제 활성화가 이들 사업의 몸값 상승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식 취급받던 8인치 파운드리 '제2 전성기'

8인치 파운드리 순이익 60% 이상 급증

23일 SK하이닉스에 따르면 8인치 파운드리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가 2분기 매출 1799억원, 순이익 27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보다 매출은 11.3%, 순이익은 63.5% 급증했다. 8인치 파운드리 기반 DB하이텍의 2분기 매출도 2417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2%, 순이익은 504억원으로 61.0% 증가했다.

8인치 파운드리는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다. 12인치(300㎜) 웨이퍼보다 크기가 작은 만큼 원가도 낮았다. 하지만 ‘미세공정’이 발전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12인치 웨이퍼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게 비용 측면에서 훨씬 유리해졌다. 대만 TSMC, 삼성전자 등 상위권 파운드리업체들은 8인치보다 12인치 사업에 주력한다. 미국 퀄컴 등 팹리스(설계 전문 업체)의 주문을 받아 스마트폰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등을 대량 생산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틈새시장으로 부상

8인치 파운드리업체들은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AP, GPU(그래픽처리장치) 등과 달리 초미세공정을 택할 필요가 없는 저화소 이미지센서, PMIC(파워반도체), DDI(디스플레이구동칩) 등을 설계하는 중소 팹리스를 적극 공략했다. 웨이퍼 가격이 비싸고 대량 주문을 해야 하는 12인치 파운드리보다 소량 생산이 가능하면서 고객 맞춤형 서비스가 뛰어난 8인치 파운드리를 이용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반도체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에서 1~2년 새 중소 팹리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8인치 수요 증가에 영향을 줬다.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는 충북 청주공장에 있는 장비를 중국 우시로 옮겨 연말 본격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비대면 경제 확대로 최근 PC, 서버 관련 반도체 주문이 밀려드는 것도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노트북용 PMIC와 웹캠, 노트북용 이미지센서 수요가 꾸준하다”고 설명했다. 장비가 오래돼 감가상각 부담이 없다는 점도 이익 급증을 뒷받침했다.

TV 수요 증가에 LCD 가격도 급등

TV용 LCD 사업도 실적에 목마른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패널업체에 단비 역할을 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지난 2월 110달러였던 55인치 LCD 패널 평균 가격은 5월 106달러로 떨어졌다가 이달 128달러로 치솟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 TV 수요가 커진 영향이 컸다.

TV용 LCD는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삼성디스플레이가 내년부터 ‘생산 중단’을 선언한 사업이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공장에서 LCD 생산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 때문에 LG디스플레이가 조용히 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 관계자는 “TV용 LCD 사업 비중이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LCD 가격 상승은 3분기 실적 개선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택근무, 원격수업 확대의 직접적 수혜 품목인 노트북 사업 역시 ‘효자’로 떠오르고 있다. 올 2분기 국내 PC·노트북 판매량은 1456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46.3% 급증했다. PC 사업 철수설에 시달렸던 삼성전자는 신제품 ‘갤럭시북’을 출시하며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