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적자 탈출에 '신제품 돌풍' …매출 3조 앞둔 풀무원 '실패의 美'
2018년 1월1일. 풀무원의 총괄 최고경영자(CEO)가 33년 만에 바뀌었다. 이효율 대표가 두번째 총괄 CEO에 올랐다. 그는 이날 풀무원의 모든 직원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작은 도전을 계속하라. 우리에겐 실패할 자유가 있다."

이 메시지가 3년간 풀무원의 DNA를 확 바꿔놓았다. '만년 적자'였던 미국 중국에서 올해 모두 흑자를 냈다. 신제품 출시 속도는 3배 이상 빨라졌다. 냉동만두, 냉장면 등 가정간편식(HMR) 전 부문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제품을 내놓았다. 식품업계에선 '요즘 가장 신경쓰이는 경쟁사'로 풀무원을 꼽는다. 지난해 매출은 2조3914억원. 사상 최대치였다. 올해는 이보다 10% 이상 늘어난 2조6000억원으로 예상된다.

입사 1호 사원으로 시작해 38년 간 풀무원과 함께 성장해 온 이 대표는 "2022년 매출 3조원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실패하면 어때?…한때 '비효율'로 불리던 승부사

이 대표는 풀무원의 최장기 근속자다. 1983년 10월 사원 1호로 입사했다. 이후 영업, 마케팅, 생산, 해외사업 등 핵심 사업을 두루 맡았다. 풀무원 내부에선 '승부사'로 통한다. 회사가 어려울 때마다 과감하게 앞에 나섰기 때문이다. 작은 유기농산물 판매점이었던 풀무원의 전국 영업망을 구축하고, 1990년대 냉장 생면 사업을 시작해 시장 1위에 올려놓은 것도 이 대표다.

2012년엔 위기에 처한 해외 사업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당시 풀무원 해외 사업은 매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 대표는 일주일에 나흘 이상 해외에 머물며 해외 사업 정상화에 힘썼다. 그는 현지 교포, 아시안 시장만 공략해선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지인도 풀무원을 먹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를 위해 2014년 일본 4위 두부기업 '아사히식품공업', 2015년 미국 1위 두부 브랜드 '나소야'의 인수를 주도했다.

"중국과 일본 출장을 각각 100여 번 다닐 정도로 해외에 살았어요. 2015년엔 미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하며 사업에 총력을 다했습니다."

풀무원은 미국 중국 일본 등 글로벌 3대 시장을 비롯해 올해 베트남에도 새로 진출했다. 미국에선 두부 제품이, 중국에선 파스타와 두부 제품이 선방하며 올해 두 국가에서 나란히 흑자 소식이 들려왔다. 중국 진출 10년 만, 미국 진출 29년 만이다.

이 대표는 사내 별명은 '비효율'.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비효율에 도전한다고해서 얻은 별명이다. 실패 경험이 축적돼 성장할 수 있었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 대표는 "실패할 자유가 곧 창의력"이라며 "반생면 기기를 들여왔다 망한 일 등 셀 수 없이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도전하지 않았다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부·콩나물만 팔 수 없다"

풀무원 사업의 뿌리는 두부와 콩나물이다. '유기농'과 '건강한 먹거리'에 집중해 온 풀무원은 상대적으로 제품 출시가 더딘 식품회사였다. 요즘 풀무원은 무서운 속도로 변신하고 있다. 신제품 전략은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지만 남과 다른 것'이다. 시중의 만두피 중 가장 얇은 두께의 '얇은 피 만두', 피자 끝 둘레의 빵을 없앤 냉동피자 '노엣지 피자' 등이 그렇게 나왔다. 1위 업체가 60%를 점유하고 있던 냉동만두 시장에서 풀무원은 단숨에 시장 2위에 올랐다. 냉동피자 역시 돌풍을 일으키며 공장 증설에 착수했다.

그가 강조하는 풀무원의 정체성은 '사람과 자연을 함께 사랑하는 로하스 기업'이다. 영리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2년까지 중장기 목표는 △매출 3조원 달성 △재해율 40% 감축 △동물복지 적용비율 200% 확대 △전 제품 100% 재활용 우수 포장재 적용 등이다.

동물복지를 위해 올해 미국 실리콘밸리의 세포배양 해산물 전문 기업인 블루날루와 포괄적 협약을 맺기도 했다. 기술 교류를 통해 제품 공동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실버 세대를 위한 고령친화식품 사업에도 선제적으로 진출했다. 개인 영양에 맞춰 솔루션을 제공하는 1:1 식생활 서비스 '잇슬림'과 개인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퍼팩'을 선보였다. 비대면 서비스가 주목받자 지난해 스마트 무인자판기 '출출박스'를 내놓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식품회사의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간편식 등 분야에선 일부 기회요인이 있기도 했지만 계획했던 해외 사업과 신사업 등은 위기가 언제 닥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전환은 물론 전방위로 건강한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더 총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취미는 시식…야간산행 즐기는 라이프

이 대표는 "취미가 시식"이라고 말할 정도로 맛에 까다롭게 접근한다. 아침 식사는 풀무원 제품으로만 한다. 약속이 없는 날은 수서동 사무실 메뉴 개발실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상품기획, 물류, 해외 사업 등을 다 해봤지만 풀무원의 본질이자 핵심은 식품사업입니다. 아무리 거창한 사업계획을 만들더라도 소비자와 가장 먼저 만나는 제품이 우선입니다."

1년에 절반을 해외에서 보낼 정도로 바쁜 그의 취미는 등산이다. 회사에서 가까운 청계산은 월 4~5회, 지리산과 설악산은 1년에 1~2회 종주한다. 야간산행도 즐겨 무박 2일 산행이나 비박 산행도 한다.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강조한다. 그의 휴대폰에는 14개월 된 손주 사진이 5500장 이상 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잘 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쉬려면 믿을 수 있는 임직원들에게 위임을 잘 하는 기술이 필요하지요.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위임해야지, 그렇지 않은 경우 방임이 될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바라는 CEO상은 '직원들과 대화하기 좋은 사람'이다. 직원들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연구실에도 불쑥 찾아가기도 한다. 임원들과 최근 함께 읽은 '공존과 지속'. "코로나19 이후 사람과 기술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토론하고 풀무원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고 그는 말했다.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공장 생산 설비를 개선할 땐 연구원들과 전 세계 공장을 찾아다니기로 유명하다. 생면 제품 개발을 총괄하던 식품기획실 본부장 시절에는 충북 음성 공장에서 2년간 거주하며 진두지휘한 일화도 있다. 지금도 모든 분야 직원들에게 강조한다.

“생산, 영업, 마케팅 모두 현장에 가서 직접 봐야 사업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습니다. 현장으로 가세요."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