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42채 사들인 다주택자, 알고 봤더니…'미국인'
미국 국적의 외국인 A씨는 외국인 중 가장 많은 42채의 국내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2018년부터 갭투자 방식으로 수도권과 충청권의 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입한 결과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67억원 상당이다.

40대 나이로 한국 내 소득이 많거나 거액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아파트를 살 때 외국으로부터 들여온 돈도 없어 자금 출처 역시 불분명하다. 알고보니 몇몇 보유 주택에 대해선 주택임대업 등록도 하지 않아 임대소득을 누락한 혐의도 받고 있다.

월세 신고 안하는 외국인만 임차인으로 들여 세금 누락

국세청은 A씨처럼 국내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탈세한 혐의를 받는 외국인 42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3일 발표했다.

30대 중국인 유학생 B씨는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에 왔다가 한국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국내에서 취업한 뒤 서울과 경기, 인천, 부산 등 전국 여러 곳을 돌며 아파트 8채를 사들였다. 이 가운데 7채를 전·월세로 임대했으나 임대 수입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직장 급여 외에 뚜렷한 소득이 있지도 않았다. 중국에서 신고하고 들여온 돈이 일부 있었지만 아파트 7채를 사들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국세청은 B씨가 중국에서 몰래 가져온 돈이 있거나 주택임대소득을 누락했다고 보고 정밀검증에 들어갔다. 중국 과세당국에도 B씨의 자료를 통보했다.

외국법인의 국내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C씨는 고가 주택만 노렸다. 본인처럼 외국인 임원급들이 좋아할만한 한강변 아파트나 강남 유명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한강이 보이는 45억원짜리 아파트와 30억원 짜리 강남 아파트 등 총 120억원 상당의 아파트 4채를 보유하게 됐다.

C씨는 외국인에게 허점이 많은 국내 법을 교묘히 이용했다. 외국인은 주민등록법상 세대주에 해당되지 않아 연말정산 때 월세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 이 점을 악용해 월세를 내더라도 따로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외국인들만 임차인으로 들였다. 본인이 거주하는 아파트 한 채를 빼고 나머지 3채는 외국인 주재원에게 임대하고 고액의 월세를 선불로 받았다. 한 달 월세만 3000만원이 훌쩍 넘었지만 주택임대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주택임대소득 누락 혐의로 C씨를 정밀 검증하고 가산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3년간 국내서 2주택 이상 구입한 외국인만 1000명 넘어

국세청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사들인 국내 아파트 건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2017년 5308건에서 2018년 6974건, 2019년 7371건으로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이다.

올들어 5월말까지 외국인의 국내 아파트 취득건수는 351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46건(27.0%) 증가했다. 올해 5월말까지 취득액은 1조253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8407억원)보다 4132억원(49.1%) 급증했다.

2017년부터 올 5월말까지 국내 아파트를 사들인 외국인의 국적을 보면 중국인이 1만3573건으로 전체의 58.6%를 차지했다. 미국인이 4282건(18.5%)으로 다음으로 많았고 캐나다(1504건), 대만(756건), 호주(468건), 일본(271건) 순이었다.

2017년부터 3년 5개월간 외국인이 매입한 아파트를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가 1만93건(43.6%)으로 서울(4473건)보다 많았다. 거래액 기준으로는 서울이 3조2725억원(42.7%)으로 경기도(2조7483억원)를 제치고 1위였다.

국내에서 두 채 이상의 아파트를 구입한 외국인은 1036명으로 파악됐다. 2주택자가 866명이었고 3주택다 105명, 4주택자 65명이었다. 이들이 취득한 아파트가 총 2467채였다.

외국인이 취득한 아파트 2만3167건 중 소유주가 거주하지 않은 아파트는 7567건(32.7%)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외국인이 실제 살지 않는 국내 아파트를 여러 채를 매입해 보유하고 있는 것은 투기성 수요로 의심된다"며 "임대소득과 양도소득 탈루 혐의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