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이 14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화상회의 형식으로 열린 하반기 롯데 밸류크리에이션미팅(VCM·옛 사장단회의)을 주재하고 있다.   롯데지주  제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이 14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화상회의 형식으로 열린 하반기 롯데 밸류크리에이션미팅(VCM·옛 사장단회의)을 주재하고 있다. 롯데지주 제공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면서 최선을 기대합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4일 열린 하반기 롯데 밸류크리에이션미팅(VCM·옛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벤저민 디즈레일리 전 영국 총리의 말을 인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내년 말까지는 이어질 것이며, 그동안 경제는 코로나 이전의 70% 수준으로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한 말이다. 그러나 그룹 임원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신 회장은 계열사 대표들에게 “위축되지 말고, 단기 실적에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으로 본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며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고 독려했다.

“내년 말까지 코로나 계속될 것”

신 회장은 이날 ‘70% 경제론’을 꺼냈다. 그는 “‘애프터 코로나’가 곧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코로나와 함께하는 ‘위드(with) 코로나’가 내년 말까지 계속될 것 같다”며 코로나19가 당분간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올해 경제활동이 지난해 대비 70~80% 수준으로 위축될 것이고 이런 ‘70% 경제’가 뉴노멀”이라며 “이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타개책으로 우선 해외 사업 전략부터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1998년 IMF 구제금융 사태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1∼2년만 잘 견디면 회복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간 많은 생산시설이 해외로 나갔지만 지금은 신뢰성 있는 공급망을 재구축할 필요성이 커졌고 투자도 리쇼어링(본국으로 생산라인 회귀)하고 있다”며 “해외 사업을 진행할 때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신 회장이 지난 3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선진국 투자 확대 방안과 같은 맥락이라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롯데는 그간 화학 등 수요가 많았던 중국과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해외 투자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이들 국가에 있는 생산 설비 운영에 차질이 생기자 선진국과 국내 위주의 투자를 하기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신 회장은 국내 계열사 대표들에게는 본업의 경쟁력을 키울 것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 5일 일본에서 귀국한 뒤 주말마다 전국의 롯데 사업장을 방문하고 있는 신 회장은 “직접 가보니 잘하는 것도 있지만 부족한 점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과 신산업도 중요하지만 그간 우리가 해 온 사업의 경쟁력을 재확인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 본업 부문을 혁신해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당부했다.

온라인 VCM…업무 방식 과감 혁신

이날 롯데그룹은 VCM을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했다. 서울 잠실과 소공동, 양평 등 3개 거점에 총 8개 회의실을 마련해 롯데지주 대표 및 임원, 식품·유통·화학·호텔 BU(사업부문)장 및 계열사 대표 등 참석자 90여 명을 분산시켰다. VCM이 오프라인이 아니라 비대면 온라인 회의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간도 대폭 줄였다. 그간 하반기 VCM은 4~5일간 진행됐다. 식품, 유통, 화학, 호텔 등 그룹 사업부문마다 하루씩 중장기 성장 전략 등을 놓고 회의했다. 마지막 날에는 부문장들이 회의 결과를 신 회장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올해는 14일 하루만 열렸다. 많은 사람이 참석한 만큼 접촉을 최소화했다.

신 회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그룹의 업무 방식을 과감히 바꾸고 있다. 신 회장 자신이 코로나19로 일본에 두 달간 체류하는 동안 화상회의와 재택근무를 해보고 “비대면 회의와 보고가 생각보다 효율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룹 내에선 롯데지주와 롯데쇼핑 등이 주 1회 재택근무를 한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