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벤처투자 역대 최대인데…기관은 자산의 1% 미만 투자"
“올 1분기 전체 벤처투자는 줄었지만 비대면 관련 전자상거래와 소프트웨어, 바이오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30% 늘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벤처투자업계에 중대한 변곡점이 되고 있습니다.”

정성인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사진)은 9일 기자와 만나 “코로나19가 촉발한 위기가 어떤 세상을 만들지 누구도 확신할 순 없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벤처투자의 공식엔 변함이 없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V자든 U자든 언젠가 경기 회복기가 도래할 텐데 그때까지 생존하지 않으면 턴어라운드 기회도 박탈된다”며 “현금 흐름을 확보해 위기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느냐가 벤처캐피털(VC)과 스타트업 모두에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한국 VC의 시초 격인 한국기술개발(현 KTB네트워크) 공채 1기로 업계에 입문한 국내 1세대 벤처캐피털리스트다. 1997년 외환위기와 뒤이어 찾아온 정보기술(IT) 붐과 거품 붕괴, 2005년 황우석 사태가 불러온 한국 바이오산업의 침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 제2의 벤처붐까지 벤처투자업계의 흥망성쇠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2005년 그가 세운 VC인 프리미어파트너스는 크래프톤(옛 블루홀), 카페24, 리디북스, 쏘카 등의 투자에 잇달아 성공하며 국내 간판 VC로 자리잡았다.

정 회장은 “얼마 전까지도 쿠팡이 롯데, 신세계 같은 유통 대기업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며 “스타트업이 산업을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시장이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기업도 스타트업을 경쟁자로 보고 마치 스타트업처럼 자기 혁신에 나서고 있고 네이버, 카카오처럼 벤처로 큰 기업들은 한 해 수십 개의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하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정말 뛰어난 소수의 승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벤처투자산업 도약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는 운용사들의 과감한 도전과 기관투자가들의 인식 개선을 꼽았다. 그는 “정부가 올해 벤처투자에 역대 최대인 2조2000억원을 투입하면서 정책 자금은 어느 때보다 풍부해졌지만 과연 민간 자금을 매칭할 수 있을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며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 자산에서 벤처투자 비중은 1%도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네이버와 카카오, 셀트리온까지 세 기업의 현재 기업 가치만 해도 지난 20년간 국내 벤처투자에 투입한 돈을 다 회수할 정도로 벤처투자의 수익성과 유망성은 검증됐다”며 “이제는 기관이 벤처 자산 비중을 3~4%까지 늘리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국 기관의 마음을 여는 것은 운용사 책임”이라며 “초기 투자부터 세컨더리(구주), 스케일업, 해외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역량을 강화해 실력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