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왁스를 매겨 짙푸른 색이 도는 레인재킷은 제가 처음 ‘바버’라는 브랜드에 입문하게 만든 옷입니다. 팔꿈치랑 옷깃에는 고풍스러운 골덴 소재를 덧대 “나 좀 클래식해”를 외치는 듯 하죠. 옷에 왁스 칠을 하면 빗방울이 떨어져도 젖지 않아 비가 자주 오는 영국에선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할 필수품이라고 합니다. 영국 클래식 왁스재킷의 대명사 바버가 국내에 알려진 것도 알렉사 청 같은 유명 모델이 바버의 비데일 왁스재킷을 자주 입은 모습이 노출되면서부터입니다. 국내에선 가수 이효리 씨가 즐겨 입어서 더 유명해졌죠.
그 바버가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 ‘슈프림’과 손을 잡았습니다. 1020 사이에서, 아니 30대 이상일지라도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브랜드 슈프림 말입니다. 패션업계에선 ‘짝퉁’이 얼마나 많이 시장에 깔리는지를 척도로 그 브랜드의 성패를 얘기하곤 합니다. 슈프림은 동네 아저씨들이 입을 정도로 ‘짝퉁’이 많이 나올 만큼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죠. 비상장회사로 매출액은 알 수 없지만 2017년 다국적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이 슈프림의 지분 절반을 5억달러(약 6119억원)에 매입한 것만 봐도 대충 규모를 가늠할 순 있습니다. 그 당시 회사 가치가 10억달러(약 1조2300억원)였다면 3년 사이에 브랜드 가치가 껑충 뛰었으니 20억달러 이상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치입니다.
“슈프림이 바버와?”라고 의아해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브랜드 이미지, 역사, 디자인 등 뭐 하나 겹치는 구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획기적인 콜라보(협업) 상품이 나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쨍한 오렌지색 왁스재킷이라니, 그동안 어떤 브랜드에서도 이렇게 ‘스트리트 캐주얼’스러운 핫한 디자인과 색상의 왁스재킷을 내놓지 않았던 걸 보면 말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작업복(워크웨어) 스타일의 큼지막한 주머니를 단 것도, 오버사이즈를 적용하되 바버 비데일 왁스재킷 고유의 클래식한 카라 등은 그대로 살린 센스까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어보입니다.
슈프림과 바버의 콜라보는 찬반 의견이 확연히 갈린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두 브랜드간 협업이 반갑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바버는 노땅 브랜드 아니냐”는 1020 세대들의 반응이 나오는 걸 보면 말입니다. 실제로 슈프림의 신상품을 소개하는 각종 사이트와 패션 전문 블로그, 쇼핑몰, 직구몰 등에서는 ‘좋아요’와 ‘싫어요’가 거의 비슷한 숫자로 갈립니다. 저처럼 바버의 클래식함가 왁스재킷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슈프림과의 핫한 만남이 반갑겠지만, 슈프림 팬으로서 바버를 몰랐던 사람 혹은 안 좋아했던 사람에겐 ‘슈프림과 어울리지 않는 브랜드’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찬성하든 반대하든 두 브랜드간 협업은 이미 패션업계의 핫 이슈가 됐습니다. 실제로 잘 팔릴지, 슈프림의 다른 콜라보 제품들처럼 리세일(재판매) 가격이 급등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말입니다. 슈프림은 ‘슈테크’(슈프림+재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든 브랜드죠. 과연 바버가 슈테크에 올라탈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그룹 블랙핑크(BLACKPINK)가 신곡 'How You Like That'을 발표하고 인기몰이 중인 가운데 뮤직비디오와 무대 의상인 '한복'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네티즌 사이에서 "블랙핑크 변형 한복 예쁘다", "한복을 세계에 더 널릴 알릴 기회다"라는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블랙핑크 입은 게 한복처럼 보인다고? 나는 무희들이 입는 옷 같던데?",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등 설전이 오가고 있는 것.게다가 지난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변형된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가 "품위가 없다", "기생 옷이냐"며 십자포화를 당했던 터라 세계적인 걸그룹 블랙핑크에게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블랙핑크는 지난달 27일 오후 1시(한국시간) 미국 NBC 간판 프로그램 '더 투나인 쇼 스타링 지미 팰런'(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 이하 '지미 팰런쇼')에서 'How You Like That' 무대를 최초 공개했다. 해당 무대는 동시 접속자 수 21만 명을 기록, 블랙핑크의 글로벌 입지를 실감케 했다.이후 블랙핑크는 64개국 아이튠즈 송 차트 1위, 뮤직비디오 공개 32시간 만에 1억 뷰 돌파 등 대기록 행진을 펼쳤다. 해외 유력 매체들도 이들의 역대급 컴백을 앞다투어 보도했다.블랙핑크는 이번 신곡에서 한복을 활용한 의상 스타일을 선보여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블랙핑크가 '지미 팰런 쇼' 무대 의상으로 한복을 택한 덕분에, 한복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도 치솟고 있다. 블랙핑크에게 한복을 제공한 한 업체의 대표는 블랙핑크의 의상에 대해 "예전 조선 시대 때 무관들의 공복이 철릭이라는 옷이다. 춤추기 편하게 기장을 많이 줄여서 짧은 드레스 형태로 변형해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이어 제니가 착용한 핑크색 봉황문 도포에 대해 "선비들이 입었던 일상복이다. 퍼포먼스 때문에 길이를 조금 더 잘라서 저고리 형태로 입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팬들의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고 실제로 한복 구매 문의가 굉장히 많이 오고 있다. 이번을 계기로 한복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201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는 전년도 수상자들이 노출이 심한 한복을 입고 나와 논란이 된 바 있다.당시 박술녀 한복연구가는 이같은 논란에 "현대적으로 바꾸더라도 전통성을 너무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박 씨는 "시대가 바뀌고 있고, 한복을 그대로 박물관에 있듯이 우리가 입자는 생각은 아니지만 우리 한복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이 있지 않나. (한복을) 바꾸더라도 전통성을 너무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라며 "세계 속의 한복인데, 너무 지금 SNS를 뜨겁게 달구는 그런 쪽에서 재조명되는 건 좀 슬픈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지켜가야 되는 우리 옷이니 더 생각하면서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2019 미스코리아 선발전에 미스코리아들이 입고 등장한 퓨전 한복은 과도한 노출로 코르셋 속옷을 연상케 해 성상품화 논란을 일으켰다.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포토슬라이드 201907129851H ]
1970년대 수제화 거리였던 서울 성수동이 ‘패션 클러스터’로 바뀌고 있다. 10년 전 성수동 대림창고가 패션쇼의 무대가 된 게 시작이다. 2~3년 전부터 패션 브랜드와 각종 체험형 매장, 카페 등이 문을 열며 1020세대의 놀이터가 됐다.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을 따라 패션회사도 집결했다. 최근 1~2년 사이 20곳 이상의 패션회사가 사옥을 옮겼거나 짓고 있다. 젠틀몬스터, 키키히어로즈, 분크, 무신사, 아더에러, ABK, 모던웍스, 키르시, 메종미네드 등이다. 패션업계는 성수동이 패션의 메카 동대문을 뛰어넘을지 주목하고 있다. 교통이 편한 데다 수제화 공장, 피혁 제품 등 원부자재 업체가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문 닫은 공장, 일터가 되다성수동은 ‘뉴트로’(새로운 복고) 트렌드의 중심이다. 인쇄소, 정비소 등 공장이 대거 모여 있어 대부분의 상업공간은 폐공장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서울 시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넓은 공간과 독특한 건축미를 살릴 수 있는 게 강점이다.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이 예쁜 공간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만하다) 플레이스’로 입소문을 낸 것은 성수동을 띄운 핵심이다.패션 뷰티 브랜드는 체험형 매장을 내거나 본사를 이전하는 방식으로 성수동에 몰리고 있다. 실제 구매는 하지 않지만 브랜드를 우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등장했다. 아모레 성수, 공간 와디즈, 성수연방, 대림창고 등이 대표적이다.아모레 성수는 아모레퍼시픽이 30여 개 브랜드 제품 2300여 종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제품 판매는 하지 않는다. 자동차 정비소를 개조한 곳으로 야외 정원을 바라보며 모든 제품을 편하게 써볼 수 있게 했다. 올 들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메이크업 서비스 등 대면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래도 하루 평균 300명이 찾는다. 지난달까지 9개월간 누적 방문자 수만 7만8000여 명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방문객 중 20%가 온라인몰에 접속해 써본 제품을 구입하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패션분야 제조·판매·디자인 시너지성수동으로 본사를 이전한 곳도 많다. 핸드백 브랜드 분크를 설립한 석정혜 디자이너, 스티브J&요니P 디자이너도 성수동을 선택했다. 스티브J&요니P 디자이너의 첫 캐릭터 전문회사 키키히어로즈는 지난달 문을 열었고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도 성수행을 택했다. 펀딩을 받는 제품을 실제로 써볼 수 있는 와디즈의 쇼룸 ‘공간와디즈’, 인기 편집숍 카시나 등도 최근 문을 열었다.성수동이 동대문을 넘어서는 ‘패션 클러스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주선, 침대 탈의실 등 독특한 공간을 선보인 아더에러 성수동 플래그십 매장처럼 독특한 공간이 밀집해 거대한 패션 스튜디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방한했던 폴 스미스 디자이너가 “최근 성수동이 뜬다고 해서 방문했는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자동차 수리공장이 많고 수제화 거리가 일찌감치 조성되며 가방 부속품, 각종 패션 부품 등 원부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패션 분야에서 제조, 판매부문과 촬영 및 디자인 스튜디오 등이 밀집한 동대문처럼, ‘성수동 클러스터’가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1970년대 수제화 거리로 유명했던 서울 성수동이 '패션 클러스터'로 탈바꿈하고 있다. 시작은 10년 전이다. 성수동 대림창고가 패션쇼의 무대가 된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2~3년 전부터 패션 브랜드와 각종 체험형 매장, 카페 등이 둥지를 트며 1020의 놀이터가 됐다.요즘 성수동은 '뉴트로(새로운 복고)' 트렌드의 중심이다. 폐공장이었던 건물이 패션 브랜드의 일터가 됐다. 2~3년 전부턴 패션 브랜드와 회사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최근 아더에러 오소이 오아이오아이 등 인기 브랜드들이 우르르 매장을 열었다. 분크, 키키히어로즈, 젠틀몬스터, 카시나 등도 모두 최근에 성수동에 본사를 옮긴 회사들이다폐공장 개조로 공간 독특해성수동의 인기는 한 마디로 '뉴트로'(새로운 복고) 트렌드로 설명할 수 있다. 인쇄소, 정비소 등 공장들이 대거 모여있는 이곳은 폐공장을 개조해 독특한 외관, 내관을 그대로 살려 카페, 매장 등을 열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예쁜 배경에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이 "인스타그래머블하다"(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만 하다)며 입소문을 낸 것이 주효했다. 1일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성수동으로 올라온 게시글만 119만건이 넘는다. #성수동카페 58만여건, #성수동핫플레이스 6만여건이 올라왔다.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층들이 몰려들자 패션회사들도 집결했다. 최근 1~2년 사이에 이곳으로 사옥을 옮겼거나 현재 사옥을 짓고 있는 곳은 젠틀몬스터, 키키히어로즈, 분크, 무신사, 아더에러, ABK, 모던웍스, 키르시, 메종미네드 등 20곳 가까이 된다.특히 체험형 매장으로 성수동에 진입하는 곳이 많다. 체험을 해본 뒤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밀레니얼세대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일단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마케팅의 기초라고 생각한 것이다.대표적 예가 아모레 성수, 공간 와디즈, 무신사스튜디오, 성수연방, 대림창고 등이다. 아모레 성수는 아모레퍼시픽이 30여개 브랜드 제품 2300여종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제품 판매는 아예 하지 않는다. 자동차 정비소를 개조한 곳으로 야외 정원을 바라보며 모든 제품을 편하게 써볼 수 있게 했다. 올 들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메이크업 서비스 등 대면 서비스를 중단했지만 그럼에도 하루 평균 300명씩 이곳을 찾는다. 지난달까지 9개월 간 누적 방문자 수만 7만8000여명.아모레 성수는 방문하기만 하면 무료로 샘플 5종을 골라 가져갈 수 있고 윗층의 오설록 카페 20% 할인쿠폰 등을 준다는 강점이 있다. 그 덕분에 방문객 중 20%가량이 온라인몰에 접속해 써본 제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자발적 입소문 마케팅을 기대한 전략이 통했다"는 게 아모레측 설명이다.원부자재 수급 쉬운 것도 강점본사를 이전한 곳도 많다. 핸드백 브랜드 중 최근 가장 인기가 많은 분크를 설립한 석정혜 디자이너도 성수동을 택했고, 스티브J&요니P 디자이너가 지난달 문을 연 캐릭터 전문회사 키키히어로즈도 성수동에 자리를 잡았다. 토종 선글라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젠틀몬스터, 펀딩을 받는 제품을 실제로 써볼 수 있게 공간와디즈 쇼룸을 연 와디즈, 인기 편집숍 카시나 등도 성수동을 선택한 회사들이다.패션업계에선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성수동은 강남, 강북으로 이동하기도 좋은 데다 수제화 공장, 피혁제품 및 원부자재 업체 등이 밀집돼있어 제조 경쟁력까지 갖춘 곳"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동차 수리공장이 많고 수제화거리가 일찌감치 조성되면서 가방 부속품, 고리 등 아주 작은 부품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앞으로 성수동이 동대문을 넘어서는 '패션 클러스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방한했던 폴 스미스 디자이너가 "최근 성수동이 뜬다고 해서 방문했는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문을 연 아더에러 성수동 플래그십스토어가 우주선, 침대 탈의실 등 내부 인테리어를 독특하게 구성한 것처럼 차별화를 시도하는 브랜드가 많아지는 것도 이같은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런 기세라면 제조부터 판매, 촬영 및 디자인 스튜디오 등이 밀집한 동대문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성수동 클러스터'가 발전해나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