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차 공장인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근로자들이 대형 트럭 조립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상용차 공장인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근로자들이 대형 트럭 조립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올해 1분기 트럭과 버스 등 상용차 판매량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경기 침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상용차 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1일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1분기 상용차 판매량은 5만5146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6만3791대)보다 13.6% 줄어든 수치다. 11년 전인 2009년 1분기(4만6234대) 후 최저치다.

영세 자영업자가 택배 등 생계형으로 활용하는 1t 트럭마저 판매가 줄었다. 1t 트럭은 그동안 경기가 어려울수록 잘팔려 ‘불황형 차’로 불렸다. 1t 트럭인 현대자동차 포터2와 기아자동차 봉고3의 1분기 판매량은 전년보다 각각 2.5%와 4.9% 감소했다. 대당 가격이 2억원이 넘어 상대적으로 경기에 덜 민감한 고가 수입 트럭도 1분기 판매 대수가 작년보다 9% 줄었다.

트럭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국내 상용차 공장 가동률은 1995년 생산 시작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간 1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 현대차 전주공장의 1분기 가동률은 40% 수준에 그쳤다. 연산 2만 대 규모의 타타대우 군산공장도 가동률이 50% 선에 머물렀다.
1t 트럭부터 대형까지 '위기의 상용차'…타타대우 희망퇴직 검토

“구매 계약을 미루거나 취소하자는 전화만 오네요.” 수도권의 한 완성차 트럭지점 판매부장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기 위축으로 트럭 판매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보다 더 부진한 상황”이라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2000만원짜리 창업용 1t 트럭부터 2억원대 수입 대형 트럭까지 차급을 가리지 않고 상용차 시장 전체가 얼어붙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출까지 막힌 상용차 공장 가동률은 역대 가장 낮은 40% 수준까지 떨어졌다.

'경기 가늠자' 트럭도 안팔린다
요식업·제조·건설 침체 직격탄

경기 가늠자인 상용차 판매가 감소한 것은 건설 시장 침체 탓이 크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탓에 주택 착공 실적은 2016년 65만7956가구에서 지난해 47만8949가구로 30% 넘게 줄었다. 도로와 교량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축소도 영향을 미쳤다. 건설 현장이 줄면 건설용 덤프트럭과 완성차를 개조해 각종 특수장비를 더한 특장차 판매도 덩달아 감소한다. 올해도 코로나19 여파로 건설 투자액이 최대 10조1000억원 줄어들 것이란 분석(건설산업연구원)까지 나오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코로나19발(發) 소비 침체로 화물 운송용 트럭 판매도 감소하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에서 팔린 상용차는 2만994대로, 전년 동월보다 11.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승용차 판매량이 9.2%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감소폭이 두드러진다. 모든 차종 판매가 줄어든 점도 특징이다. 1t 트럭인 현대자동차 포터2와 기아자동차 봉고3의 지난달 판매량은 전년보다 각각 11.7%, 3.4% 감소했다. 4.5~7.5t급 화물 운송을 담당하는 현대차 메가트럭(-29.6%)과 택배 등 냉동탑차로 쓰이는 현대차 뉴마이티(-26.7%)도 1년 새 판매가 30% 가까이 줄었다.

가격이 2억원에 달하는 볼보와 스카니아 등 고가의 수입 상용차 판매도 꺾였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 상용차 등록 대수는 373대로, 전년 동월보다 20.5% 감소했다. 상용차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 창업 트럭부터 화물·건설용 트럭까지 모든 상용차 판매가 줄었다”며 “요식업부터 제조·건설업까지 모든 산업 경기가 나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위기감 커지는 상용차업계

트럭 판매가 쪼그라들면서 상용차를 생산하는 현대차 전주공장과 군산에 공장을 둔 타타대우상용차는 일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차 전주공장의 연간 상용차 생산 대수는 설비 규모(연 10만 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대차 노조 전주공장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6만3464대였던 전주공장 상용차 생산량은 작년엔 4만4105대로 30% 넘게 줄었다. 1995년 공장 가동 이후 최저치다.

올 들어서도 판매 부진이 이어진 탓에 공장 가동률은 40%대로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해 판매량이 현대차가 전주공장 트럭 생산 인력 280명을 다른 공장으로 전환 배치한 2018년(4만7474대)보다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자 직원들의 고용 불안도 커지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주공장 생산 라인 축소 등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며 “전주공장은 앞으로 수소상용차 등 친환경 상용차 공장으로 육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버스 모델이 없고, 경기를 많이 타는 4.5t 이상 중대형 트럭만 생산하는 타타대우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2015년 1만 대를 웃돌았던 타타대우 판매량은 지난해 5265대로 반토막 났다. 2016년 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 1조원에 달했던 매출도 2018년엔 6500억원으로 30% 넘게 줄었다. 판매 부진에 따른 고정비 증가로 2018년 350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데 이어 지난 3월 끝난 2019년 회계연도엔 적자폭이 600억원대로 더 커졌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설까지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 전주공장과 타타대우의 상용차 판매 부진이 익산과 김제 등 전북 지역 130여 곳의 부품 협력사 경영난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