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기간산업 지원과 고용안정 등에 90조원가량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기간산업 지원과 고용안정 등에 90조원가량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기간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과 정부 지급보증 방식의 금융 지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벼랑 끝에 놓인 산업계가 정부에 하루빨리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사항이다.

22일 정부가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새로 조성해 항공, 해운, 조선, 자동차 등 주요 업종 기업에 40조원의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산업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산업은행이 자금을 빌려주고 정부가 지급 보증을 하는 방식이다. 다만 안정기금 지원을 받으려면 △고용 유지 △배당·자사주 취득 등 금지 △지원금 일부를 주식 등으로 정부에 제공 등 조건을 지켜야 한다. 이르면 다음달 지원이 시작될 전망이다.
7대 기간산업 대기업에 '40조 수혈'…정유·유화산업 추가키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혜택 볼 듯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은 항공, 해운, 조선, 자동차, 일반기계, 전력, 통신 등 기간산업 기업에 지원된다. 당초 코로나19 피해가 큰 항공, 해운 등이 주로 검토됐으나 부실의 선제적 예방 차원에서 다른 기간산업도 포함시켰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대상 업종에 정유나 석유화학 등도 포함될 수 있으며 24일 산업은행법 개정안 제출 때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원은 대기업 위주로 이뤄진다. 중소기업은 시행 중인 100조원 규모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 협력사들은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는 얘기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HMM(옛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대기업 가운데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다만 자동차부품은 자동차산업의 일부로 보고 지원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지원 범위와 대상 역시 산은법 개정안 발표 때 확정된다. 기업별·업종별 지원 한도는 따로 두지 않는다.

재원은 정부가 지급 보증하는 기금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다. 민간 펀드 등의 참여 문도 열어놔 기금 규모는 40조원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지원받으려는 기업은 기간산업안정기금 설치 관련법 시행 이후 1년 안에 신청해야 한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대출 지급보증 출자 등 다양한 방식

지원 방식은 산업 특성과 개별 기업 수요에 맞춰 대출, 지급보증, 출자 등 다양하게 이뤄진다. 다만 출자는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주식연계증권과 상환전환우선주 등 우선주, 펀드 출자 등 방식을 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민간자금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펀드와 특수목적기구(SPV)에 대한 민간의 출자와 신용공여 등을 허용하기로 했다.

기금 운용 기간은 5년이다. 정부는 산은 내부에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심의위원회를 설치해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조성은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정부는 24일까지 산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기금채권 발행을 위한 국가보증 동의안은 이달 28일 예정된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낼 예정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5월 국회에서 산은법이 개정돼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신속히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다만 기금 설치 전 긴급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는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자구 노력을 전제로 먼저 지원하기로 했다.

고용 유지 안 하면 지원 대상 빠져

정부는 다만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을 받으려면 다양한 조건을 충족하도록 했다. 도덕적 해이 방지 등을 위해서다. 미국과 독일 사례를 참고했다는 설명이다.

우선 일정 기간, 일정 비율 이상 일자리 수를 유지해야 한다. 구체적인 수준은 향후 마련할 계획이지만 ‘최대 6개월간 지원받는 시점의 90% 이상 유지’가 유력하다. 고용노동부는 6개월마다 △지원받은 기업의 일자리 수 변동 △변동 시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지 등을 점검해 산은에 통보한다. 정부는 당초 약속을 못 지키면 가산금리를 부과하거나 지원 자금을 감축·회수할 방침이다. 고액 보수와 배당·자사주 취득 등도 제한된다. 지원 기업은 대출금을 모두 갚기 전까지 임직원에게 일정 금액 이상의 연봉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 배당과 자사주 취득도 금지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미국도 정부자금 지원을 받는 항공사들은 임직원에게 42만5000달러 이상 연봉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고 배당, 자사주 취득도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기업 이익 공유 장치도 넣는다. 지원 금액의 15~20%를 신주인수권부사채, 전환사채 등 주식연계증권, 상환전환우선주 등의 형태로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정부가 기업 지분을 일정 부분 취득한다는 얘기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