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소상공인·저소득층 477만2000가구를 대상으로 전기요금 납부기한을 3개월 늦춰주기로 했다. 당초 전기요금을 일부 깎아주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채택하지 못했다. 한국전력이 최악의 경영 위기를 겪고 있어 요금 감면 부담을 떠넘길 수 없는 데다 정부 예산 역시 한정돼 있어서다.

한전 적자 호소에 전기료 감면 빠져…저소득층은 3개월 납부 유예
30일 3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확정된 ‘전기요금 부담완화 방안’에 따르면 정부와 한전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다음달 18일부터 청구되는 월별 전기요금 납부기한을 3개월씩 연장해주기로 했다. 기한 연장(3개월)이 종료돼도 올해 말까지 분할납부할 수 있다. 최장 7개월의 연장 효과가 있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의 설명이다.

납부 유예 대상은 소상공인 320만 가구와 저소득층 157만2000가구다. 소상공인은 상시근로자 5인(제조업·광업 등은 10인) 미만 사업자다. 저소득층 기준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소득자, 장애인, 독립·상이유공자 등이다.

계약전력 20㎾ 이하(소용량 설비)의 소상공인과 저소득층 정보는 한전이 이미 확보하고 있다. 대상자가 별도 서류를 내지 않아도 한전에 유예 신청만 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계약전력이 20㎾를 초과하는 소상공인은 ‘소상공인 확인서’를 따로 내야 한다. 소상공인·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월 2500원인 KBS 방송 수신료도 3개월 유예해준다.

이번 납부 유예에 따른 효과는 총 1조2576억원에 달한다는 게 정부 계산이다.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의 월평균 전기요금을 각각 12만5000원, 2만원으로 가정한 결과다. 납부 유예에 따른 금융비용은 전액 한전이 부담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기요금은 작년 지원액이 1조5000억원을 넘었을 만큼 다양한 요금 할인 제도가 있다는 걸 고려해 감면 조치는 빠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전이 ‘정상적인’ 경영 상태를 유지했다면 전체 국민·기업을 대상으로 전기요금 감면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란 게 전력업계의 얘기다. 전기요금을 1% 깎아주면 한전이 약 5000억원의 손실을 떠안는 구조다. 정부와 한전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했던 2015년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을 한시 인하했다.

한전은 2016년 영업이익이 12조16억원에 달했으나 탈원전 정책이 가속화한 2018년부터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영업손실(-1조3566억원)은 2008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컸다. 2016년 143.4%이던 한전 부채비율은 작년 186.8%로 치솟았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