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 대란’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한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르면 다음주부터 전국 모든 병원에서 전화 상담·진료와 이메일을 통한 약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상당수 국가가 오래전 도입한 원격의료를 한국은 비상사태가 터진 뒤에도 ‘급한 불 끄기’ 용도로만 활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고도 의사로부터 전화 상담 및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합병원을 포함한 모든 병·의원에서 원격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상담 내용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복지부 관계자는 “어떤 질환이든 의사가 재량껏 판단해 환자와 상담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며 “중증질환은 전화로 진료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원격의료는 감기 등 가벼운 질환 위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약 처방전도 병원 방문 없이 팩스나 이메일 등을 통해 받을 수 있다. 의약품 배송까지 허용할지는 검토 후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진료시스템 마비 우려…뒤늦게 의료기관 규제 빗장 풀어

이제서야…원격의료 한시 허용한다는 정부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진료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일부 산간벽지·농어촌 등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에서조차 비대면 진료는 단순 상담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진단·처방까지 받으려면 환자 옆에 간호사 등 의료인이 있어야 한다.

이번 ‘원격의료 전면 허용’이 비록 ‘한시적’이란 단서가 붙었지만 의료계 안팎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정부가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강북삼성·건국대병원 등 일부 의료기관에 한해 전화 진찰을 허용했다. 다른 점은 이번에는 모든 의료기관에 빗장을 풀었다는 데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의 파장이 전례를 따질 여유가 없을 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로 진료 시스템이 마비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코로나19 검사는 보건소와 일부 의료기관에 있는 선별진료소에서 하는데, 일반 감기 환자까지 선별진료소에 몰리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경증 환자가 선별진료소에 몰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병원 내 감염을 우려한 일반 환자들이 병원 방문을 꺼리면서 국민 건강이 악화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야 하는 노인 만성질환자와 어린아이가 특히 문제다.

코로나19 감염자들이 방문한 병원이 잇따라 폐쇄된 것도 원격의료를 한시 허용한 이유가 됐다. 대구만 해도 시내 주요 병원 응급실 중 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이 폐쇄됐다.

다만 정부는 이번 조치가 원격의료 본격 시행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원격의료를 허용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례없이 광범위하게 규제를 푼 조치 자체가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정부가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기회에 미국, 중국, 일본 등 대다수 나라처럼 원격의료를 전격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의료업계의 한 관계자는 “급격한 고령화로 만성질환자가 늘어나고 있어 평시에도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크다”며 “시대착오적인 규제를 전향적으로 풀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