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면서 가뜩이나 힘들게 버텨온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3일 썰렁해진 서울 명동 거리에서 매장 직원들이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면서 가뜩이나 힘들게 버텨온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3일 썰렁해진 서울 명동 거리에서 매장 직원들이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북의 한 쇼핑몰 안에서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엊그제 힘든 결정을 내렸습니다. 직원 및 아르바이트를 6명 고용해 왔는데 이 중 한 명에게 “상황이 워낙 어려우니 당분간 나오지 말라”고 통보한 것이죠. 김 씨는 “다른 직원 두 명에게는 일하는 시간을 줄여달라고 부탁했다”며 “언제까지 버틸 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분위기는 새해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2월 들어선 매출이 예년 대비 40~50% 줄었다고 합니다. 그는 “같은 프랜차이즈를 하는 경기도 모 지점의 일평균 매출은 5분의 1로 감소했다더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자영업자는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으로 자가 격리된 사람들에게 월 100만원 넘는 생계비를 준다는데, 전염병 공포로 폐업 위기에 처한 우리나 일자리를 잃게 된 종업원들은 누가 책임져 주냐”고 하소연했습니다.

자영업자들은 이미 그로기 상태였지요. 지난 3년 간 최저임금이 30% 넘게 급등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껑충 뛰었습니다. 직원을 새로 뽑지 않고 ‘가족 운영’으로 버티는 곳이 속출했습니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도입된 ‘주 52시간 근로 의무화’는 치명타가 됐습니다. 직장 회식 문화가 사라지다시피 하면서 저녁 소비 시장이 얼어붙었지요. 설상가상 이번 전염병 사태까지 터진 겁니다.

정부가 부랴부랴 자영업자 및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2조원을 긴급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장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자영업자에게 돌아갈 몫은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이마저 대출 이자나 보증 지원이 전부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정부 대책의 골자는, 우한 폐렴으로 매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연 2.0% 금리 대출을 주선하거나, 특례 보증을 제공하는 겁니다.

자영업자들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은 여러 통계에서 확인됐습니다. 통계청의 최신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작년 3분기 사업소득 증가율은 전 분기 대비 -4.9%를 기록했습니다. 정부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후 최저치입니다. 또 소득 하위 40%에 포함된 자영업자 비중은 1년 전보다 3.5%포인트 늘었지요. 소득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자영업자들이 상당폭 늘고 있다는 위험 신호입니다.

자영업자들은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가 활황이냐 불황이냐에 따라 매출이 큰 차이로 달라지기 때문이죠. 역대 정부의 경제 성장률 평균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성장률과 비교해보는 건 그래서 의미있을 겁니다. 투자 시장에서 어떤 펀드 또는 펀드 매니저가 잘 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시장 평균 수익률 대비 얼마나 초과 달성(outperform)했는 지를 살펴보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OECD가 공개한 2000년 이후의 각국 경제 성장률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2003~2007년) 5년 간 우리나라의 실질 성장률은 연평균 4.74%를 기록했습니다. OECD 평균(2.83%) 대비 1.91%포인트 높았지요. 직전이던 김대중 정부(2000~2002년 3년 기준) 땐 그 차이가 무려 4.76%포인트나 됐습니다.

이명박 정부(2008~2012년) 때도 우리나라 성장률은 선진국 평균을 크게 상회했습니다. 한국(3.34%)과 OECD 평균(0.67%) 간 차이가 2.67%포인트에 달했습니다. 경제 운용만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잘 대처했다는 평가가 가능합니다. 박근혜 정부(2013~2016년) 들어선 한국 경제와 OECD 간 성장률 차이가 0.99%포인트로 좁혀졌습니다.

경제 성장률 격차로 따져본 한국 정부 성적은 문재인 정부(2017~2019년) 들어 눈에 띄게 나빠졌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지난 3년 간 우리나라 성장률은 평균 2.6%였는데, 이는 OECD 평균(2.23%) 대비 0.37%포인트 상회할 뿐입니다. 이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는 건 더 큰 문제입니다.

OECD 평균 대비 우리나라의 ‘성장률 아웃퍼폼 정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낮을수록 경제 운용 점수 나쁨)

김대중 정부 4.76%p
노무현 정부 1.91%p
이명박 정부 2.67%p
박근혜 정부 0.99%p
문재인 정부 0.37%p

보수·진보 성향을 떠나 이번 정권의 경제 운용 실력이 가장 떨어진다는 평가가 가능합니다. 그 중심엔 현 정부가 세계 최초로 들고 나온 ‘소득주도성장 이론’에 있다는 게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의 해석입니다.

이처럼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 가장 타격을 받는 집단은 역시 자영업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로소득자의 경우 강력한 노조로 인해 임금 삭감이나 해고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특히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25.1%(2018년 기준)에 달합니다. 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높습니다. 우리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곳은 그리스(33.5%), 터키(32.0%), 멕시코(31.6%), 칠레(27.1%) 뿐이죠. 모두 선진국은 아닙니다. 반면 미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6.3%이고 일본도 10.3%에 불과합니다.

한국에서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이유로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게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힙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기업’이 그만큼 적다는 것이죠. 정부가 인위적으로 공무원과 공기업 일자리를 늘리고 있지만,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할 국민 부담만 늘릴 뿐입니다.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 사스(SARS)나 메르스(MERS) 당시를 돌이켜 보면,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 역시 단기간 내 종식되기 어렵습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해 2.4% 성장률을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자기 주문성 포부를 밝혔지만,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 전문가는 별로 없을 겁니다. 영국의 한 경제분석기관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을 1.5%로 예측했지요.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구조에서, 실패한 자영업자가 근로소득자로 재편입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다른 어느 때보다 힘든 해를 보내야 할 600만 자영업자들.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나요.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