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민주주의와 학문의 산실

아크로폴리스가 신의 장소라면, 아고라(agora)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치와 학문을 꽃피운 인간의 장소다.

'함께 모이다'라는 뜻에서 유래해 '광장'이라는 의미를 갖는 이곳에서 아테네 시민은 이야기를 나누고, 회의를 하고, 재판을 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신들의 도시, 섬들의 나라] ② 인간의 장소, 아고라
◇ 소크라테스를 따라가다
2천여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서 그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의회 역할을 했던 회의장인 '불레우테리온'은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 뒤로 보이는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거의 유일하게 잘 보존된 상태로 남아 있는 건물이다.

아고라 안에는 시민들이 산책하거나 집회를 하던 스토아(stoa·기둥이 늘어선 회랑)가 가장 많았고, 신전과 무기고, 식당 등의 건물이 흩어져 있었다.

그 건물들의 일부였을 밑돌과 밑동만 남은 기둥, 돌무더기들을 지나 낮은 석벽 아래 빈터에 섰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은 시민 법정이 있었던 자리다.

500명의 아테네 시민은 이곳에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소크라테스만큼 현명한 사람은 없다'는 델포이의 신탁에 의문을 품은 소크라테스는 아고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지혜와 진실,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모든 아테네인이 신을 숭배하던 시절, 소크라테스가 새로운 생각으로 젊은이들을 현혹했다며 불경죄를 뒤집어쓰게 된 이유다.

[신들의 도시, 섬들의 나라] ② 인간의 장소, 아고라
필로파포스 기념비가 있는 언덕 아래, 그가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한 달 동안 머물렀다는 감옥이 있다.

하지만 당시 아고라 안에도 감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감옥의 위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저물녘 찾은 이곳에는 앞서 다녀간 누군가 두고 갔을 빨간 장미 한 송이가 창살 안에 놓여 있었다.

그 창살 문 앞에 서서 고개를 드니 나뭇가지 너머로 멀리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이 작게 바라다보였다.

[신들의 도시, 섬들의 나라] ② 인간의 장소, 아고라
상점가였던 아탈로스 스토아 자리에 들어선 박물관에서는 아고라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민주정을 위협하거나 독재자가 될 위험이 있는 인물의 이름을 적어내 국외로 추방하는 '도편 추방제'에서 투표용지 역할을 한 도자기 조각(도편)과 행정에 참가할 사람을 무작위로 뽑는 데 사용한 제비뽑기 기구인 '클레로테리온' 등 교과서에서 봤던 민주정치의 도구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외부 회랑에 전시된 수려한 조각상들은 몸통 혹은 두상만 남아 전쟁과 침략의 시간을 웅변하고 있었다.

아고라를 나와 아크로폴리스 북동쪽을 둘러싼 플라카 역사 지구로 발을 들여놓으면 아테네의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미로 같은 작은 골목길은 식당과 카페는 물론, 신상과 가면, 투구와 방패 등 고대 유적을 본 따 만든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약간의 상상을 더하면 고대 아고라의 분위기를 음미해 볼 수 있다.

[신들의 도시, 섬들의 나라] ② 인간의 장소, 아고라
◇ 폐허 위의 상상
소크라테스의 말을 기록으로 남긴 제자 플라톤과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학원인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 역시 원형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폐허의 흔적들로만 남아 있다.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은 원래 교육기관인 김나시온이 있던 지역의 이름이다.

김나시온은 아테네 성곽 밖 숲과 시내가 있는 곳에 들어섰고, 이곳에서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신체와 정신을 단련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중에 이곳에 학원을 세우면서 지역의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

젊은이들을 사랑했던 소크라테스는 아고라만큼이나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비교적 멀리 떨어진 데다 남아있는 게 없어 평범한 공원과 구별되지 않는 아카데미아 대신, 가까운 리케이온으로 향했다.

이국적 식물이 높이 자란 국립정원을 가로지르며 메마른 아테네 땅의 오아시스 같은 이곳을 천천히 누리고 싶었지만 촉박한 시간 때문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신들의 도시, 섬들의 나라] ② 인간의 장소, 아고라
우거진 숲을 나와 마주한 리케이온에서 땀 흘리며 운동하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이나, 숲을 거닐며 제자들과 토론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전형적인 그리스 신전, 대표적인 신과 철학자를 온전하고 그럴듯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은 고대 유적이 아닌, 현대 그리스 학문의 중심지인 아테네 학술원이다.

19세기에 완공한 학술원 건물 정면에는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이 늘어서 있고, 박공벽에는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올림포스의 신들이 조각돼 있다.

양옆으로는 창과 방패를 든 아테나와 리라(lyra)를 든 아폴론이 높은 기둥 위에 위용을 드러내며 서 있고, 그 아래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근엄하게 앉아 있다.

게으른 후대를 위해 고대 아테네의 정수를 한 장에 담은 깔끔한 요약본 같았다.

[신들의 도시, 섬들의 나라] ② 인간의 장소, 아고라
◇ 올림픽과 마라톤
국립정원 남쪽의 길 건너편에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판아테나이코스 경기장이 있다.

기원전 4세기부터 아테네인들이 수호신 아테나에게 바치는 가장 큰 축제인 판아테나이아 제전이 열릴 때 운동 경기를 하던 장소였다.

기원후 2세기 아크로폴리스 아래 음악당을 지었던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이곳도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재건했지만 로마 제국 이후엔 거의 방치돼 있었다.

1896년 이곳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렸고, 오늘날까지도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를 개최국 대표단에 넘겨주는 장소다.

108년 만에 아테네에서 다시 열린 2004년 하계 올림픽 때는 양궁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다.

대부분의 육상 경기는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진행됐지만, 마라톤 골인 지점은 판아테나이코스 경기장이었다.

이곳을 찾은 하루 전날에도 마라톤 대회가 열렸었다.

관계자들이 마라톤 대회를 위해 설치한 시설물을 철거하는 동안 어떤 관광객은 아직 남아있는 시상대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신들의 도시, 섬들의 나라] ② 인간의 장소, 아고라
마라톤 경기가 기원전 490년 아테네와 페르시아가 마라톤 평원에서 벌인 전쟁에서 유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령 페이디피데스가 42.195㎞를 달려 아테네의 승전을 알리고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에 가깝다.

마라톤 전투를 가장 자세하게 기록한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기록에 따르면 페이디피데스는 승전보가 아닌 스파르타에 원군 요청을 위해 보낸 병사의 이름이고, 그가 달린 거리는 200㎞가 넘는다.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거리는 36㎞ 남짓이었고 1896년 처음 열린 마라톤 경기의 거리는 40㎞였다.

이후 주최국 사정에 따라 조금씩 거리가 달라지다가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 당시 왕족들이 출발과 골인 장면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지점을 조정하면서 195m가 늘어난 것이 1924년 파리 올림픽 이후 기준이 됐다.

[신들의 도시, 섬들의 나라] ② 인간의 장소, 아고라
참고도서
'아테네:영원한 신들의 도시'(장영란)
'아테네의 변명'(베터니 휴즈)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