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업에 과감한 투자…한국 유통산업 도약 계기 만들어
'소유와 경영 미분리' 고수…결국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냈다.

탁월한 사업 수완과 동물적인 감각, 남다른 성실성과 완벽주의로 자수성가한 사업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독단적으로 전권을 휘두르는 '황제 경영'과 폐쇄적인 지배구조 등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소유와 경영을 동일시한 신 명예회장의 경영 방식이 두 아들 간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부친인 신 명예회장과는 다른 스타일로 롯데그룹을 개혁하고 있다.

신격호의 롯데, '자수성가 사업가'vs'황제 경영' 엇갈린 평가
◇ 감각·안목 탁월한 사업가 신격호
신 명예회장은 제조업 위주였던 한국 산업계에서 일찌감치 서비스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하게 투자했다.

경영권 분쟁 등을 겪으면서 신 명예회장의 롯데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나오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을 오가며 열정을 바친 그의 기업가 정신은 롯데그룹 성공의 원동력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롯데쇼핑을 통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의 유통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

또한, 관광산업이 주목받지 못하던 1970년대부터 호텔롯데를 세우고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를 건립했다.

잠실에 세워진 제2롯데월드 역시 신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격호 명예회장은 맥락을 제대로 포착해 내는 '감'과 앞을 먼저 내다보는 안목이 대단한 사업가"라며 "유통과 관광, 화학까지 그 시대에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경영권 이전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한 점은 아쉽다"며 "경영 환경이 완전히 달라져서 예전처럼 감으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만큼 롯데는 더 철저한 분석을 통한 경영 시스템을 갖춰야 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모국에 대규모 투자를 함으로써 한국의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신 명예회장이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 중 하나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일본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2천만 달러의 사재를 출자하고 5억 달러의 외자를 도입하기도 했다.

김승욱 중앙대 교수는 "1970년대는 한국에 자본이 부족했고 정부가 투자를 유치하려고 애썼으나 여의치 않았던 시절"이라며 "한국 경제가 불투명하던 시기였지만 신 명예회장은 재외동포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관광과 면세점산업에 기여한 공로도 매우 크다"며 "한국의 면세점 시장이 세계 1위가 된 것도 한국형 시내면세점을 성공한 롯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격호의 롯데, '자수성가 사업가'vs'황제 경영' 엇갈린 평가
◇ 보수적·폐쇄적…'황제 경영' 지탄
그러나 신격호 명예회장에게는 '황제 경영'이라는 꼬리표도 따라다녔다.

국내 여러 재벌에서 나타나는 폐해이기도 하지만,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신 명예회장의 전근대적인 경영 방식이 더욱 부각됐다.

신 명예회장의 황제식 경영은 '손가락 경영'으로 통한다.

그는 2015년 7월 일본 도쿄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주요 임직원 10여 명을 갑자기 불러 모아 손가락으로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6명의 이름을 가리키며 해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롯데그룹에서 신 명예회장의 구두 지시로 인사나 경영상의 주요 결정이 좌지우지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와 함께 극히 일부 지분만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한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기업지배 구조도 문제로 지적됐다.

낮은 지분으로도 '손가락 경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순환출자로 지배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신 명예회장은 계열사 상장을 극도로 꺼리고 소유와 경영을 하나로 생각하는 사업가였다.

2006년 롯데쇼핑 상장이 추진될 당시 그는 "왜 회사를 남에게 파느냐"고 못마땅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을 회사 일부를 매각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그는 일본 롯데 계열사는 한 곳도 상장하지 않았다.

신 명예회장은 두 아들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비슷한 지분을 분배했고, 이는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졌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신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자금을 들여와 국내 산업을 발전시켰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그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권 분쟁을 거쳐 한일 롯데 '원톱' 자리에 오른 신동빈 회장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 상장과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추구하며 신 명예회장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주사 체제 출범 등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도 끊었다.

신 명예회장이 남성 중심적 성향을 보였다면, 신동빈 회장은 여성 인재를 중시한다는 차이도 있다.

양형모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신동빈 회장은 경영과 가족의 분리 측면에서 신 명예회장과 대조적"이라며 "신 명예회장의 경영스타일이 보수적, 일본식이라면 신동빈 회장은 진취적, 서구식"이라고 진단했다.

신격호의 롯데, '자수성가 사업가'vs'황제 경영' 엇갈린 평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