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기업(300인 이상 사업장) 정규직의 월 평균임금(시간당)을 100원이라고 했을 때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2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비정규직은 63원, 중소기업 정규직은 57원을 받았다. 정부가 해마다 사업장 규모·고용형태별 임금격차를 발표하고 있지만 최근 5년간 이 비중은 거의 변화가 없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 같은 양극화의 근본 원인으로 호봉제 임금체계를 지목하고 임금체계 개편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호봉제가 청년채용 줄이고 조기퇴직 늘리는데"…기업 60% 아직 연공서열 집착
정부, 민간기업 호봉제 개편해야

고용노동부는 13일 기업들의 임금체계 개편을 돕기 위한 참고서 격인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책자를 제작해 배포했다. 책자에는 구체적으로 △임금구성 단순화 △임금체계 개편 방법·사례 △직무가치에 기반한 인사관리체계 도입을 위한 직무 분석·평가방법 △제조업 범용 직무평가 도구 활용방법 등을 담았다.

"호봉제가 청년채용 줄이고 조기퇴직 늘리는데"…기업 60% 아직 연공서열 집착
임서정 고용부 차관(사진)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기업들의 주된 임금체계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인상되는 호봉제여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호봉제 비율은 해마다 소폭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6월 고용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의 호봉제 운영 비율은 58.7%였다. 2016년 63.7%에서 5.0%포인트가량 줄긴 했지만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호봉제를 유지하는 비율이 높다. 300인 이상 사업체의 호봉제 비율은 60.9%였다.

국내 기업의 연공성, 즉 오래 다닐수록 임금이 오르는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임금 대비 30년 이상 근로자 임금은 3.3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유럽연합(EU) 15개국 평균과 비교하면 약 2배, 한국과 비슷한 임금체계를 운영 중인 일본(2.5배)과도 차이가 컸다.

이 같은 형태의 임금체계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에 나선 이유다. 임 차관은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기업들이 호봉 상승으로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더라도 감당할 수 있었다”며 “경제성장률이 연 3% 미만인 저성장 기조에서는 청년 신규채용과 중·고령자 조기퇴직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 늘리는 수준” 실효성 의문

정부가 야심차게 민간부문 임금체계 개편에 나섰지만 산업현장의 기대는 크지 않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고용부가 수차례 임금체계 개편 관련 발표를 했지만 노동계의 반발로 유야무야된 사례가 많았다”며 “이번 매뉴얼 역시 구체적인 대안 없이 민간기업 컨설팅을 늘리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2000년 초 한국노동연구원에 임금직무혁신센터를 세워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해왔으나 아직도 300인 이상 기업 10곳 중 6곳 이상은 호봉제 임금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이렇다 할 임금체계를 갖추지 못한 100인 미만 사업장의 호봉제 비율은 15.8%에 불과하다.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낸 것은 처음이 아니다. 노동연구원 내 임금직무혁신센터 출범 이후 매뉴얼을 발표했고, 특히 2014년 3월에는 구체적인 직종의 바람직한 임금체계를 제시하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해 민간기업의 임금체계 개편을 종용하기도 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