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밀·팥으로 빚은 찐빵, 10만명 찾은 부안 명물됐죠"
“손님 중에 ‘일반 찐빵이랑 비교해 특별히 더 맛있지 않은데 왜 비싸게 받냐’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비판 같지만 저희는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글루텐이 거의 없어 빵을 만들기 어려운 ‘우리밀’만 사용하는데도 비슷한 맛이 난다는 건 칭찬이거든요.”

전북 부안에 있는 슬지제빵소. 우리밀로 만든 찐빵과 우리팥만 쓰는 팥음료 등을 파는 이곳은 최근 변산반도 일대를 찾는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 중 하나로 꼽힌다. 김슬지 대표(35·사진)는 “우리 농산물만 쓰겠다는 아버지의 장인정신과 부안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슬지제빵소는 2017년 8월 문을 열었다. 가게의 겉모습만 봐선 귀촌한 청년이 새롭게 만든 시골의 멋진 카페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김 대표와 찐빵의 인연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대표의 아버지인 김갑철 대표가 부안 읍내에 ‘슬지네안흥찐빵’이라는 상호로 찐빵집을 연 것은 19년 전인 2000년이었다. 처음엔 일반 찐빵집과 다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수입 밀과 수입 팥을 썼다. “2004년께 부안에 핵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주민들이 일제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건강과 안전에 대해 다시 생각하셨다고 해요. 그러면서 먹거리도 더 건강하고 안전한 것으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재료를 국산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슬지제빵소의 ‘오색찐빵’
슬지제빵소의 ‘오색찐빵’
수입 밀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격이 비싸기도 했지만 우리밀에 글루텐 성분이 거의 없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글루텐 성분이 없으면 빵의 모양을 잡거나 쫄깃하게 만들기 어렵다. 김갑철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발효종과 발효액, 누룩 등을 사용하는 제조 방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특허로 등록됐다. 또 다른 핵심 재료인 팥도 국산을 썼다. 앙금을 만들 때 부안 뽕잎을 삶은 물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김슬지 대표는 주얼리에 관심이 많았다. 고교를 졸업한 뒤 바로 서울로 올라가 주얼리숍 등에서 일하던 그는 25세가 돼서야 대학에 진학했다. “금속공예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했었죠. 물론, 부안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요.”

2013년 무렵 가게를 함께 꾸리던 어머니 임형자 씨가 갑상샘암에 걸려 대수술을 하고, 이를 신경 쓰던 김갑철 대표까지 피부암으로 고생하게 되자 김갑철 대표가 4남매에게 SOS를 쳤다. “당시 큰언니는 시집을 간 상태라 움직이기 어려웠고, 막내는 아직 고등학생이었어요. 셋째는 부안에서 ‘탈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고, 결국 남는 건 저뿐이더라고요.”

김슬지 대표는 좋은 재료로 만드는 찐빵에 대한 아버지의 고집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곰소염전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지금의 슬지제빵소를 짓자고 강력 주장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2017년 8월 슬지제빵소가 문을 연 뒤 매출과 방문객 수가 크게 늘었다. 매출은 2017년 3억3300만원에서 2018년 8억9900만원으로, 방문객 수는 같은 기간 3만2000명에서 7만5000명으로 늘었다. 슬지제빵소 오픈 전인 2016년엔 1만 명 정도가 읍내에 있는 슬지네찐빵 매장을 찾아 1억3500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에 비하면 큰 폭의 성장이다. 지난해 방문객 수는 10만 명에 달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두 동생도 합류했다. 팥과 찐빵 생산 라인은 막냇동생인 김종우 씨(25)가 담당한다. 셋째 김태양 씨(32)는 슬지제빵소의 다양한 음료 메뉴를 개발하고 온라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슬지제빵소의 핵심 콘셉트는 ‘모든 식재료를 지역에서 조달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로컬푸드 개념이다. 주재료인 밀은 부안군에 있는 농가들이 생산한 것을 수매해 전주에 있는 협력업체에서 가공한다.

팥은 지역 농가의 생산량으로는 물량이 부족해 남원의 팥 연구회를 통해 추가로 받는다. 2018년 사용한 팥 양만 20t에 달한다. 최근엔 고추 등 밭농사를 짓는 인근 농민들에게 팥으로 작목전환을 할 수 있는지를 타진하기도 했다.

부안=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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