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 턱 없애고 간판 글자 키워…‘노인 친화’ 도쿄거리 >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에 육박하는 일본은 고령화에 맞춰 도시 풍경도 바뀐 지 오래다. 노인들이 많이 찾는 주요 상업지역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도로 턱이 사라졌고, 주요 공공기관 안내판과 상점 간판 글자 크기도 커졌다. 사진은 도쿄 스가모지역 거리. 김동욱 특파원
< 도로 턱 없애고 간판 글자 키워…‘노인 친화’ 도쿄거리 >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에 육박하는 일본은 고령화에 맞춰 도시 풍경도 바뀐 지 오래다. 노인들이 많이 찾는 주요 상업지역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도로 턱이 사라졌고, 주요 공공기관 안내판과 상점 간판 글자 크기도 커졌다. 사진은 도쿄 스가모지역 거리. 김동욱 특파원
지난달 27일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서 야쿠자의 한 간부가 내부 파벌싸움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행동대원으로 참여한 혐의로 체포된 두 명의 나이는 72세와 68세. ‘젊은 피’가 마르면서 “야쿠자도 늙었다”는 일본 사회의 한탄이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한국보다 20년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 곳곳이 바뀌고 있다.

100세 이상만 7만 명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고령화백서에 따르면 2018년 말 일본 총인구(1억2671만 명)에서 65세 이상(3515만 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27.7%다. 유엔이 정한 초고령사회 기준(65세 이상 인구 20% 이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7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3.8%(1748만 명). 고령자 기준연령을 열 살 높여도 고령사회(65세 인구 비중 14% 이상)로 분류될 정도다. 지난 9월에는 100세 이상 인구가 7만 명을 돌파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일본이 ‘노인국가’가 됐다는 건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햄버거 체인점에서 느릿느릿 주문을 받는 ‘노인 알바생’을 만나거나 백발의 택시기사를 접하는 건 흔한 일이다. 2018년 말 기준 도쿄 법인택시 기사의 평균 연령은 58.2세다.

일본의 고령화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로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일본 인구는 2007년 이후 11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가 팽창하던 시절 조성한 사회 인프라와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든 구조가 됐다.

공적연금 및 사회보장 재원 마련을 둘러싼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80대 노인이 되는 2030년에는 사회보장 관련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네 배 수준인 2000조엔(약 2경1866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민연금 1262조엔, 의료비 458조엔, 요양 등 간병비 247조엔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일본 정부가 각종 사회보장비 감축 구상을 잇따라 내놓는 배경이다. 일본 정부는 75세 이상 고령자의 의료비 자기부담률을 현행 10%에서 20%로 인상하고, 연금 받는 시점을 현행 65세보다 늦추면 지급액을 올려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1999년의 일본은 2019년의 한국

야쿠자도 택시기사도 '백발'…햄버거 가게 '노인 알바' 수두룩
‘일본의 오늘은 한국의 내일’이란 말이 있다. 초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의 변화상을 보면 한국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은 몇 년 전 일본의 모습과 비슷할까. 전문가들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를 꼽는다. 지난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4.8%로, 일본의 1995년(14.6%)과 비슷하다. 일본이 1990년대 중반 맞이한 ‘인구 오너스’(생산연령인구 비중 하락 여파로 경제성장 지체)도 요즘 한국의 고민거리다.

다만 늙어가는 속도는 한국이 두 배 가까이 빠르다. 이즈음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화율은 △2000년 17.4% △2005년 20.3% △2010년 23.3% 등 5년마다 3%포인트씩 높아졌다. 한국은 올해 14.8%에서 2025년 20.2%로 6년 만에 5.4%포인트나 뛰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오시오 다카시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인구 전망부터 GDP 대비 사회보장비 지출 비율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한국은 1990년대 후반 일본과 매우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한국의 반면교사”

고령화 충격은 한국이 일본보다 클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일본에 ‘고령화 충격파’를 안겨준 단카이 세대는 3년에 불과했지만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훨씬 더 길었기 때문이다. 저출산 현상도 한국이 일본보다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995년 1.5명에서 2005년 1.26명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상승 추세로 돌아서 지난해 1.42명이 됐다. 이에 비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5년 1.24명에서 지난해 0.98명까지 떨어졌다.

일본이 고령화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친 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고령자 취업 확대, 연금지급 연령 상향, 의료보험 개혁 논의를 시작했지만 그뿐이었다. 대책이 나온 건 결국 고령화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뒤인 2012년이었다. 노년층을 시혜의 대상, 부양 대상이 아니라 자조(自助)의 대상으로 바꾸는 게 골자였다. 고령자 취업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의 노인 고용률은 남녀를 불문하고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며 “일본 사회가 고령자 취업 확대를 인구대책의 핵심 의제로 선택한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