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준 전 통계청장 "비정규직 증가 '소주성' 실패 보여준 것"
“통계의 표면과 이면을 면밀히 검토해 정책의 반성과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들이 국가 통계의 신뢰와 객관성을 스스로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사진)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통계청과 청와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통계청과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에 따른 비정규직 폭증을 통계조사 방식의 변경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가 1년 전보다 86만7000명 늘어난 것을 두고 통계청이 ‘질문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부분에 대해서다. 86만7000명은 통계청이 비정규직을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 증가치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고용 예상 기간을 묻는 항목이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추가되면서 기존에 정규직으로 답했던 이들이 스스로를 비정규직으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예전 기준으로는 정규직에 포함됐을 35만~50만 명이 조사 방식 변화로 비정규직에 포함되게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유 전 청장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고용 예상 기간을 묻는 항목은 2003년부터 존재했다”며 “해당 주장은 집계 체계를 제대로 모르거나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통계청 조사에서는 고용 예상 기간을 근로자가 스스로 특정하지 못하더라도 계약의 단순 갱신, 의도에 반한 해고 가능 등의 요건이 있으면 비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어서다.

“청와대와 통계청 주장대로 8월 조사에서 대상자가 답을 바꿨다고 하더라도 둘 다 비정규직에 속하는 비기간제 근로자가 기간제 근로자로 바뀌었을 뿐 정규직 근로자가 비정규직으로 탈바꿈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35만~50만 명이 다른 분야로 새로 분류됐다는 설명도 앞뒤가 맞지 않다. 유 전 청장은 “통계청 등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사 방식 변경으로 근로자들이 유입된 기간제 비정규직은 늘고, 빠져나간 비기간제 비정규직은 줄어야 한다”며 “하지만 실제로는 기간제 비정규직이 79만5000명 증가할 때 비기간제 비정규직도 16만7000명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비정규직 급증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경기침체 상황에서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급등시키고 근로시간 단축을 감행한 게 화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고용의 질에 큰 문제가 생긴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고용 증가는 9만7000명에 불과한 사이 정규직으로 짐작되는 30~40대 고용이 25만 명 감소했다”는 설명이다.

유 전 청장은 2015년 5월부터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까지 2년여간 통계청장으로 근무한 고용 및 통계 전문가다. 그는 “정책의 개선을 위해서는 통계를 올바로 읽어야 한다”며 “잘못된 정책에 따른 결과에 대해 조급한 마음에 변명으로 일관하면 개선과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