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발전 설비에 꼭 필요한 에너지 저장장치(ESS)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지난 2년여 간 총 28건 발생했다. 올 5월 경북 칠곡군의 ESS 설비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진압하고 있다. / 사진=한경DB

태양광 발전 설비에 꼭 필요한 에너지 저장장치(ESS)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지난 2년여 간 총 28건 발생했다. 올 5월 경북 칠곡군의 ESS 설비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진압하고 있다. / 사진=한경DB

“답이 없다.”

지난 27일 경남 김해시에 있는 태양광 발전설비의 에너지 저장장치(ESS)가 또 다시 터지자 정부와 업계는 ‘멘붕’에 빠졌습니다. 수 개월에 걸친 원인 조사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는데도 백약이 무효인 셈이 됐기 때문이죠.

ESS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장치입니다.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며 확대해 왔지요. 탈(脫)원전 대신 내세우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2017년 기준 7.6%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을 달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합니다. 2016년 274개뿐이었던 ESS 설비가 작년 전국적으로 1490개로 급증했던 배경이죠.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입니다.

2017년 8월 전북 고창에서 시작된 ESS 화재는 그동안 국내에서만 총 28건 발생했습니다. 작년 말부터 진행했던 민·관 합동 사고조사위원회가 올 6월11일 “화재 원인이 복합적”(정확한 원인은 파악 불가)이라고 발표한 뒤 여러 방지책을 내놓았지만 그 이후에도 추가 화재가 5건이나 났지요.

정부의 대책 발표 후에도 ESS 화재가 잇따르자, 2차 사고조사위원회가 소집됐습니다. 이번엔 ‘정부 측’은 빠졌습니다. 민간 차원에서 조사한 뒤 대책을 마련하라는 취지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정부도 파악하게 된 겁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민간 위주 조사단이 화재 원인을 찾는 중”이라며 “LG 삼성 등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제조업체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란 겁니다. LG화학 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들은 “차라리 배터리 문제라는 결론이 명쾌하게 나면 전부 리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강조합니다. 배터리 업체들은 현재 ESS 사업주들을 대상으로 최대 70%까지만 가동하도록 안내한 뒤 그 손실분에 대해선 자체 보상해주고 있지요. 삼성SDI와 LG화학이 이번 ESS 화재와 관련해 마련해놓은 대응 비용만 각각 2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확실성에 따른 손실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요.

특히 올 8월30일 충남 예산에서 발생한 태양광 ESS 화재는 제조업체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LG화학 측이 사고 직전 배터리 셀를 100% 점검·교환했고 전력변환장치(PCS)까지 일일이 검증했습니다. 그런데도 화재를 막지 못했던 겁니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LG화학 관계자들은 이 화재에 대해 “최소한 충남 예산의 ESS에선 화재가 안 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진짜 멘붕이 왔다.”고 말했답니다.

똑같은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는데 해외 ESS 사업장에선 화재가 나지 않는 반면 유독 우리나라 설비에서만 연달아 불이 나는 점도 ‘미스터리’입니다. 단순히 특정 배터리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는 사이 ESS 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습니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백화점과 지하철 역, 대형 병원, 대학, 경기장, 대형 쇼핑몰, 도서관, 극장 등 다중이용시설에 ESS가 상당수 설치돼 있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에너지로 꽉 차 있는 ESS의 특성상 일단 불꽃이 튀면 순식간에 주변으로 번지고, 진압 장비를 총동원해도 전소될 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윤 의원은 “다중이용시설에서 가동되는 ESS는 언제든 대규모 사망사고를 부를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며 “정부가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재생에너지 보급을 최우선했던 정부는 ESS 화재가 잇따르자 한 발 빼는 모습입니다. 1차 때와 달리 2차 사고조사단에 참여하지 않는 게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지난 8월 출범한 민간단체 ‘ESS 생태계 육성 통합 협의회’ 관계자는 “1차 조사 및 대책 발표 후에도 ESS 화재가 잇따르자 정부도 상당히 당황하고 있다”며 “현재 배터리업체들이 자체 점검만 하고 있을 뿐 정부 차원에서 과충전 자제 등 별도 지시가 내려온 건 없다”고 했습니다.

현재 전국의 1000개 넘는 ESS 사업장 중에서 ‘70% 충전 제한’ 등 비상 안전조치를 이행하고 있는 곳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 ESS 사업주 입장에선 낮시간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조금이라도 더 저장해야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열 곳 중 아홉 곳에선 언제 사고가 터져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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