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경 비나텍 대표는 연초 대기업 임원인사 기사를 빠지지 않고 살펴봤다. 대우전자부품에서 탄탈룸 커패시터 제조·영업팀장을 맡고 있던 때였다. 성 대표는 “1997년 1월 1일자 신문에 실린 대기업 임원 중 모교(전북대) 출신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부장 직급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50세 이전에 퇴직하면 뭘 해야 하지? 가족은?” 39세였던 성 대표 머릿속엔 이 같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창업을 결심했다. 그가 1999년 세운 비나텍은 글로벌 슈퍼커패시터 시장 점유율 48%를 차지하고 있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성도경 비나텍 대표(왼쪽 두 번째)가 한국무역협회가 선정한 ‘제123회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배수천 한빛회 수석부회장, 성 대표, 한진현 무협 부회장, 강승구 한빛회 회장, 정영재 한빛회 수석부회장.   /한국무역협회 제공
성도경 비나텍 대표(왼쪽 두 번째)가 한국무역협회가 선정한 ‘제123회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배수천 한빛회 수석부회장, 성 대표, 한진현 무협 부회장, 강승구 한빛회 회장, 정영재 한빛회 수석부회장. /한국무역협회 제공
대용량 슈퍼커패시터 첫 개발 성공

슈퍼커패시터는 에너지를 저장한 뒤 필요할 때 순간적으로 고출력 전기를 보낼 수 있는 에너지 저장장치다. 일반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저장력은 100분의 1 수준이지만 출력 능력은 100배가량 높다. 슈퍼커패시터의 사용처는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 체크해 시간대별로 전력이 필요한 곳과 남는 곳을 알려주는 ‘스마트 미터기’다.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 삽입돼 컴퓨터 전원이 나갔을 때 순간적으로 전력을 공급해 데이터 백업을 도와주는 기능도 한다.

이 회사의 슈퍼커패시터 하이캡은 ‘용량이 적다’는 기존 경쟁 제품의 한계를 극복한 게 특징이다. 기존에 많이 사용되던 제품의 에너지 밀도는 2.7볼트(V)였으나 비나텍은 2010년 세계 처음으로 23% 증량한 3.0V짜리 슈퍼커패시터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성 대표는 “1~1000패럿(F·전기용량 단위) 미만의 원통형 슈퍼커패시터 분야에서 세계 최대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제품이 빛을 본 건 아니었다. 부품 바꾸기를 꺼리는 기업이 많아서였다. 그러나 2012년 세계 1위 스마트 미터기 제조기업이 비나텍 제품을 선택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성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 있는 ‘아이밴파 태양열 발전소’가 비나텍 제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입소문이 퍼졌다”고 말했다.

성도경 비나텍 대표, 슈퍼커패시터 세계 1위…매출 80%가 수출
“내년 매출 800억원 목표”

비나텍은 미국 유럽 인도 베트남 등 12개 국가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329억원) 중 수출 비중이 약 80%(264억원)에 달했다. 성 대표는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고객이 없을 정도로 매출 분산이 잘 돼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수출에 애를 먹었다. 성 대표는 “대부분 중소기업이 기술이 있어도 유통망을 뚫지 못해 사장된다”며 “미국 영국 인도 등 주요 시장의 경쟁사에서 퇴직한 영업 임원을 사장 월급의 두 배씩 주고 모셔왔다”고 말했다.

최근엔 신제품도 내놨다. 슈퍼커패시터의 단점 중 하나는 가끔 전해액이 흘러나와 제품이 부풀거나 터지는 현상이 생겼다는 점. 그는 “화학적으로 전해액이 부풀거나 밖으로 흐르지 않는 제품 ‘하이캡 V2C’를 출시했다”며 “신제품 개발을 위해 매년 100억원 이상씩 투자 중”이라고 말했다.

직원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연간 8~10명씩 마이스터고 2학년 재학생을 뽑아 석사까지 마칠 수 있도록 학비를 대준다. 성 대표는 “내년 6월께 코스닥시장 상장을 계획 중”이라며 “개발에 성공한 수소연료전지 사업이 확대되면 내년에 8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